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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휴머니티스(인문학) 르네상스‘ 의 조건
[헤럴드경제=함영훈 라이프스타일부장] 대구성서공단은 지난달말 부터 예술과 인문학, 패션과 디자인의 역사, 부자들의 철학과 전략, 성공하는 기업가들의 관상법, 자아발견 등을 내용으로 ‘CEO들을 위한 따뜻한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경남 창원 상공회의소는 지난 1월 ‘인문학이 기업 경쟁력이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인문학 특강을 개설했다.

아주대 인문대학과 평생교육원도 최근 CEO와 전문직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한 ‘최고관리자 인문학 과정’을 열었고, 인천대 평생교육원은 이달들어 시대 변화 적응하기, 디지털시대의 변화 관리, 나의 가치를 통한 행복한 삶 만들기 등을 주제로 인문학 강좌을 시작했다. 순천향대는 구로 IT기업 43곳과 손잡고 ‘G-향 클럽’ 결성해 인문학 강좌를 공유하고 산학협력도 도모한다. 서울대, 고려대, 대한상의가 벌이는 고액의 인문학과정엔 정ㆍ관ㆍ재계 사회지도층이 몰린다고 한다.

신입사원 공채때 삼성은 인문학 지식문제를 출제하고 현대차는 역사에세이를 도입했으며 SK는 인ㆍ적성시험에서 역사 객관식 10문항 신설했다. KB국민은행은 신입사원 심층면접때 인문학 토론을 시킨다. 대한생명은 ‘인문학에서 보험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직원 대상 인문학 교육 과정을 3년째 진행 중이다.

강신주와 유홍준, 김난도는 각종 매체에 출연하며 인문학을 설파하고, 급기야 여야의원 31명은 인문학의 연구·인력양성·사업화 지원, 지역인문강좌센터 설립, 국립인문정책연구원 설치 등을 내용으로하는 인문학 진흥법을 발의했다.

‘인문학 열풍’이라고 한다. 인문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듯 하다. 과연 그럴까.

한국출판인회의가 대형서점 8곳의 판매량을 집계한 이달 중순 베스트셀러 톱12에 ‘자력’으로 오른 인문학 관련서적은 없다.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한 ‘스크린 셀러’들이 득세했다. 영화 ‘겨울왕국’ 스토리북, 프로즌, 무비 클로즈업, 스티커북 등이 4자리를 점령했고, 인기 드라마에 소개된 ‘신기한 여행’과 유럽여행서, 소설 ‘정글만리’가 몇 개 순위를 차지한다. 인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강신주의 ‘감정수업’, 김은주의 ‘1cm’, 법륜의 ‘인생수업’이 나머지를 메꿨지만 저자들의 TV 출연 등에 따른 유명세 덕이 컸다.

‘도서관 천국 속에 사는 문화 시민’이라는 서울 사람들의 지난해 연간 독서량은 11.96권으로, 2008년보다 7.52권이나 줄었다. 한 권이라도 읽은 시민을 기준으로 한 서울시 집계결과이다. 아예 독서와 담 쌓고 사는 사람은 26%였고, 1년간 도서관 한 번 안간 시민은 74%나 됐다. 독서결핍증의 가장 큰 이유는 ‘바빠서’였다.

최근 5년간 전국 4년제 대학 인문학 관련 학과 400개가 사라지면서 캠퍼스에는 ‘인문학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열풍과 결핍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간 가치 탐구와 자기 성찰의 과정이어야 할 인문학 습득을 한쪽에서는 인간 관리나 설득-웅변의 마케팅 기술로 활용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현실성 없는 것’으로 간주해 배척하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전적으로, 인문학은 인간성, 인간애, 인도적품성 등을 뜻하는 '휴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됐고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열풍을 느끼는 쪽이나 결핍을 가진 쪽이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학교에서의 인문학은 생존 위기에 몰린 가운데, 학교밖에서 개설되는 인문학 강좌들의 면면을 보면 경영학 아래 인문학을 하나의 기능 처럼 배치한 느낌도 들고, 전략적, 사교적 목적으로 채택한 인상도 지울 수가 없다. 감각적 매체인 TV를 통해 나오는 인문학 토크 프로그램은 ‘인문학을 소모품으로 전락시켰다’는 일각의 지적에 직면에 했다. 그간 고도성장 과정에서 몸에 밴 기능주의, 지식 도구주의가 인문학의 온전한 효능을 방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배운 사람이 그러면 쓰나’라는 말이 있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탐구하고 실행에 옮겼더라면, 책의 가르침이 곧 현실임을 느끼게 되고, 그런 인문학이 강물 처럼 흐르는 대지 위에 ‘노블레스 오블리쥬(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가 살아 숨쉬며, 합리적ㆍ생산적ㆍ인간적인 사회발전 방안을 함께 모색하지 않았을까.

인문학이 사회 갈등과 소음을 줄이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교양서 속 성현의 좋은 말씀과 우리가 사는 현실 간 차이를 좁히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런 일은 필부필부(匹夫匹婦) 보다는, 많이 배운 정치,경제,사회,문화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혜와 실천에 기대는게 옳지 않은가.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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