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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 한상완> 과점시장과 약탈가격
유럽선사 ‘P3’ 원가이하 공세
한국해운사는 눈덩이 적자
정부의 구조조정 요구 ‘이중고’
해운보증기금도 감감 ‘한숨만’


경제용어에 ‘약탈 가격(Predatory Pricing)’이라는 것이 있다. 독점시장에서 경쟁자를 몰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가격이다.

지배적 사업자는 자신이 가진 가격 결정권을 바탕으로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시장 가격을 형성하는데 이것을 약탈 가격이라고 한다. 경영 적자를 견디지 못한 경쟁자가 퇴출될 때까지 지배적 사업자는 약탈 가격을 유지한다. 경쟁자가 퇴출돼 독점구조가 완성되고 나면 드디어 시장가격을 독점 가격 수준으로 인상한다.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비싼 독점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시장에서도 약탈 가격은 존재한다. 경쟁 상대를 제거하기 위한 치킨 게임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이 경우에도 역시 시장 가격이 원가 이하로 내려가고, 경쟁력이 약한 쪽은 퇴출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반도체시장이다.

수년 전 치킨게임으로 독일의 키몬다가 파산했다. 대만, 일본의 반도체 산업들도 피해가 막심했다. 다행인 것은 우리 기업들이 약탈 가격 전략을 구사한 주체여서 이후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들의 세계시장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졌다는 점이다.

약탈 가격에 대한 국내 시장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정책적 접근법에서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국내 시장에서는 정책 우선순위가 소비자 이익 보호에 있다. 경쟁기업을 퇴출시키고 독점 구조가 공고화될 경우 궁극적으로는 소비자가 비싼 가격을 지불하게 된다. 정부는 이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 공정거래법, 반독점법, 경쟁제한법 등 나라마다 이름은 서로 달라도 독점구조의 형성을 규제하는 법을 다 가지고 있는 이유다.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약탈 가격은 아무도 제재하지 않는다. 글로벌 제재기구가 없기도 하려니와 개별 국가는 자국 기업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정책을 구사한다. 산업기반 보호를 통한 국익 증진이 소비자 이익 보호보다 우선하기도 하려니와 외국 소비자를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세계 1~3위의 유럽 선사들은 ‘P3 네트워크’를 결성했다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당연히 경쟁 제한 여부를 심사할 것이다. 문제는 공정위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쟁제한적이라고 판결을 하면 부산신항은 중요한 고객을 잃게 된다. 반대로 판결을 내면 글로벌공룡 등쌀에 우리 해운사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 정부가 미리미리 해운사들을 도와서 경쟁력을 높여놨으면 P3 네트워크의 부산 입항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해운보증기금을 설립해서 도와주겠다는 정책만 발표하고 실제 추진하지는 않았다. 그 사이 유럽의 국가들은 P3 해운사에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선대 효율화를 할 수 있도록 엄청난 자금 지원을 단행했다. 그 지원을 바탕으로 그들은 우리 해운사들에 약탈 가격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1~3위 유럽 선사들이 P3 네트워크를 결성한 목적은 다른 나라 선사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함이다. 특히 한국 해운사들이 주된 타깃이라는 것은 국제 해운시장에서 공공연한 이야기다. 한국 해운산업은 세계 5위권의 선대를 거느리고 있다. 우리 경제규모보다 훨씬 더 많은 선복량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시장에서 공격적으로 환적화물(다른 나라 화물)을 유치한다. 유럽 선사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그들의 약탈 가격 때문에 우리 해운사들은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해운보증기금은 국내 해운사들이 다 부실화된 지금에도 감감무소식이다.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우리 해운사들에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또 대량화물 화주의 해운업 인수ㆍ합병(M&A)을 허용해 전업 해운사의 경쟁력을 깎아먹고 있다. 유럽선사들이 하고 싶은 일을 우리 정부가 도와주는 형국이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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