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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소와 어우러진 트럼펫…서양악기 써도 한국정서 담기면 국악”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등 국악대중화 앞장 이해식씨…국립국악관현악단 20일 재조명
70~80년대 라디오 국악PD 활동
전국 방방곡곡 민속음악 수집 토대
바람 · 춤 · 굿 모티브로 150편 작곡

무당의 굿은 신과 인간 잇는 행위
건반을 모스부호 쳐서 하늘로…
피아니스트 역시 일종의 무당


젊은 시절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던 작곡가 이해식(72)은 이때 수집한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150여편에 달하는 곡을 만들었다. 바람ㆍ춤ㆍ굿을 모티브로 평생 그가 작곡해온 작품들이 오는 20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작곡가 시리즈’를 통해 재조명된다.

1970~80년대 KBS FM 국악 담당 프로듀서를 지냈던 이해식은 논두렁이나 굿판, 상여가 지나가는 곳 등 민속음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승용차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달밤에 혼자 카메라와 녹음기를 양쪽 어깨에 둘러메고 시골길을 걸어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날 형사가 찾아와서 취조를 하는 거예요. 시골에 낯선 사람이 다니니까 마을 주민이 간첩으로 신고를 했던 거죠”

이런 웃지 못할 일도 겪었지만 사탕이나 막걸리를 들고 찾아가 소리를 청하면 시골 사람들은 신나게 응해주곤 했다. 당시 토속민요 수집은 생업이기도 했지만 그가 곡을 쓰는 데 원천이 됐다.

이번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는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두레사리’도 전남 나주의 들노래(논밭에서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 ‘뜰모리’와 경기 고양시의 ‘호미걸이 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특히 한국인의 신명과 한을 풀어내는 ‘굿’은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굿은 서양식으로 말하면 예배예요. 신이 인간에게 제사를 지낼 기회를 준 것이죠. 굿이라고 하면 작두날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엽기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굿이 더 많아요. 오늘날 공연이나 행사가 끝나고 나면 ‘뒤풀이’를 하는데, 옛날로 치면 다 같이 어울려 춤을 추던 ‘판굿’과 같죠.”

굿판에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것은 무당이다. 그는 음악가 역시 ‘무당’이라고 말한다.

“피아니스트든 바이올리니스트든 신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무당이죠. 건반을 모스부호로 쳐서 하늘로 보내는 거예요. 한국 사람은 누구든 무속적인 기질을 타고납니다. 저는 그 기질을 작곡으로 돌렸고, 연주자들은 연주로 돌린 겁니다.”

굿뿐만 아니라 우주의 호흡이라는 ‘바람(風)’과, 말보다 먼저 소통의 수단으로 쓰였던 몸짓을 바탕으로 한 ‘춤’ 역시 그가 평생 추구했던 주제다. 그는 1988년부터 스포츠댄스를 배웠고, 지금도 하루 두 시간씩 꼬박꼬박 춤을 배우고 있다.

이처럼 바람을 추구하고 춤을 사랑하는 국악작곡가 이해식은 전북 부안의 한 농사 짓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동네 할머니들이 부르는 육자배기 등 우리 소리는 항상 그의 곁에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대학 때는 작곡과에 가고 싶었지만 작곡과 정원이 15명인데 16등을 하는 바람에 서울대 국악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이는 전화위복이 됐다. 대학 4학년 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최초로 서양음악과 국악 부문 동시 수상을 하며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KBS 프로듀서를 거쳐 지난 2009년까지 영남대에서 음악대학 교수를 지냈다. 퇴직 후 작곡에서 손을 놓았지만 이번 공연을 위해 ‘호적을 위한 트럼펫’을 새로 썼다. 지난 2일과 3일 이틀 밤을 새워서 완성한 곡이다. 젊은 시절 밤 새워 곡을 쓰던 열정이 오랜만에 되살아났다.

이해식 작곡가는 젊은 시절 전국을 누비며 수집했던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150편에 달하는 곡을 만들었다. 바람ㆍ춤ㆍ굿을 주요 모티브로 작곡해온 그는 “한국 사람은 누구든 무속적인 기질을 타고난다”고 말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이 곡에서는 풍물놀이에서 흥을 유발하는 호적(태평소)과 서양 관악기의 대명사 트럼펫이 어우러진다. 그는 앞서 피아노 등 다른 서양 악기들도 국악관현악곡에 사용했다.

“윤이상이 한국 악기로 작곡한 곡은 없지만 그의 음악에는 한국의 정신이 담겨 있어요. 중동에서 들여온 악기인 호적도 한국 악기로 귀화됐듯 피아노, 트럼펫, 첼로도 한국 악기로 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국악작곡가 중에는 한국 악기를 많이 쓰지만 서양적인 분위기를 내는 곡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양 악기를 쓰더라도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곡이라면 국악이라고 할 수 있죠,”

그의 작품에서는 피아노, 가야금뿐만 아니라 항아리, 주판알도 훌륭한 소리를 내는 악기로 사용된다. 탬버린으로 연주하는 곡도 적지 않다. 신식 무당이라면 굿을 할 때 방울 대신 탬버린을 쓸 것이라는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이 같은 시도를 40여년간 이어왔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국악을 어렵게 생각하고 멀리한다.

“국악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배우지 않아서 어려운 거예요. 학교에서 서양음악부터 가르치고 국사나 국어에 비해 국악은 유독 배울 기회가 적죠. 예술은 학습을 해야지 커피숍에 앉아서 듣는 이지리스닝처럼 쉽게 생각할 수는 없어요.”

국악의 맥을 이어가는 후배들에게도 그는 학습, 특히 ‘인문학’ 공부를 강조했다.

“베토벤은 실러, 괴테, 셰익스피어 등의 책을 부지런히 읽고 영감을 얻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인문학을 강조했었죠. 젊었을 때는 모든 학문의 기저인 인문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국악의 살아 있는 역사’ 이해식을 비롯한 강준일, 김영동 등 거장 작곡가 3인의 명곡을 소개하는 작곡가 시리즈는 20~2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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