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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 칼럼 - 박재식> 자본시장의 미래 경쟁력, 신뢰
금융은 냉정하고 차가운 업종이다. 소수 아래 몇단위까지 정확하게 숫자를 기록하고, 공학 분야에서 쓰이던 계산기술을 응용해 모든 행위에 가치를 매기고, 위험을 측정한다. 그러나 금융에서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신뢰이다. 지폐는 두 손으로 찢으면 그냥 찢어지는 종이에 불과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이 만원이라고 생각할 때, 그 종이는 가치 있는 돈이 된다. 종이를 ‘돈’으로 만드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믿음인 것이다.

‘금융에 대한 신뢰’는 금융회사가 만기에 약속한 이자와 원금을 제때 돌려줄 것이라는 믿음, 금융회사가 고객을 위해 일하고 고객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고객의 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 특정 고객을 다른 고객과 차별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산업의 신뢰도는 크게 추락했다. 일부 해외 언론과 영화에서는 금융산업을 ‘탐욕 비즈니스’로까지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저축은행 사태와 LIG와 동양의 기업어음(CP) 불완전 판매, 카드사의 고객정보 유출 등 대형 금융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금융업 전체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금융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금융회사와 금융서비스를 신뢰한다는 의견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금융소비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금융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그간의 금융정책이 금융산업의 발전과 성장에 중점을 둬왔다면, 이제는 소비자 보호 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금융소비자 보호가 주요 의제로 설정되고, 세계은행이 금융소비자보호 모범 규준을 발표하는 등 국제사회에서의 논의도 활발하다. 우리 금융당국에서도 올해 업무보고에서‘국민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 및 조직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종래에는 소위 은행과 보험을 중심으로 소비자보호가 논의돼 왔지만, 이제 탈규제산업인 자본시장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가 강조되고 있다. 파생상품, 구조화 상품 등 금융상품의 복잡ㆍ다기화로 정보 비대칭이 커진 데다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의 공유와 대등한 협상력을 전제로 한 ‘전통적 투자자’ 개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투자업의 경우 어느 선까지 영업행위 규제가 이뤄져야 하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자본시장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업행위 규제를 강화할 경우 자본금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균형적 접근이 요구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의 경우에도 영업행위 규제 범위, 개별 법령과의 충돌 문제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신뢰가 자본시장업계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부상할 것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적정한 수준의 금융소비자 보호를 정착시키는 것이 금융투자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주요 과제가 되리라 본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감안해 자본시장업계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박재식 한국증권금융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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