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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안철수와 심순애
굳이 구체적 통계를 적시하지 않더라도 정치인의 신뢰도가 완전 바닥권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말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게 생각하니 정치인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은 지 오래다. 정치권 전체를 싸잡아 구태(舊態)라며 비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가 최근 통합을 전격 선언했다. 지방선거를 꼭 석 달 남겨 놓은 시점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 세력 간 이합집산은 늘 있는 일이기에 그리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마찬가지나 특히 민주당은 선거 직전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라 신당을 만드는 데는 프로급이다. 그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가 어려울 정도다.

다만 놀랍고 충격적인 것은 그 파트너가 안철수 의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안 의원은 다를 줄 알았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소한 기존 정치권이 보인 구태는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역시 말 뒤집기를 밥 먹듯 하는 그저 그런 정치인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안 의원의 정치권 등장 과정을 되짚어 보면 이번에 그가 보인 행동은 정말 실망스럽다. 18대 대선을 1년여 앞둔 어느 날 의사로, 기업가로, 교수로 명망을 쌓아온 안 의원이 바람처럼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젊은이들 대상의 청춘 콘서트를 진행하던 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언급할 때만 해도 그냥 지나가는 바람인 줄 알았다. 안철수와 정치는 아무리 짜 맞춰봐도 한 곳도 이가 맞지 않았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고착화되다시피 한 ‘박근혜 대세론’을 일거에 무너뜨리며 강력한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탄력을 받은 ‘안철수 신드롬’은 거칠 것이 없었다. ‘오래 전 계획의 실천’이라며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신드롬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많은 국민이 환호한 것은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제 그 이유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안 의원의 목적은 분명해졌다. 3년 뒤 19대 차기 대권이다. 그가 그토록 혐오하고 비난하던 기존 정치세력과 손을 잡은 것은 목적의 실현을 위해서다. 신당을 창당해 힘들게 돌아가느니, 경험과 인적 자산을 가진 세력의 도움을 받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심순애는 이수일을 사랑했지만 집안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김중배의 돈을 택했다.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눈가로 가져간다. 그 순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알고 보니 심순애는 가난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이수일보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처음부터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관객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어떠했을까.

안 의원은 두 정치세력이 합쳐져도 새 정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호랑이를 잡으려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는 표현도 썼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지만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그간 국민의 바람을 생각해서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정재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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