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읽기 - 문호진> 황우석의 진정한 속죄
혜전탈우(蹊田奪牛). 남의 소가 내 밭을 밟고 지나갔다고 밭 주인이 그 소를 빼앗는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저지른 잘못에 비해 처벌이 혹독함을 이르는 말이다. 황우석은 세계적 과학자의 명성을 얻을 욕심에 남의 밭을 밟고 지나가는 반칙을 했다. 그게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 여겼다. 2004년 3월과 2005년 6월, 국제적 권위의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에 줄기세포 연구실적을 부풀려 게재했다.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실용화 가능성을 과장해 농협과 SK에서 연구비를 받아내고, 정부지원 연구비 중 일부를 빼돌린 혐의도 받았다. 2005년 서울대 진상조사위는 논문 조작을 발표했고, 다음해 4월 황우석은 서울대에서 쫓겨났다. 이른바 ‘줄기세포 스캔들’이다.

실험실 밖의 달콤함과 안온함을 탐한 대가는 혹독했다. 황우석은 이후 난치병 환자의 구세주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추락했다. 온갖 저주의 화살이 비오듯 쏟아졌다. “독극물을 주사할까, 목을 맬까, 약을 먹을까….” 자살충동도 수시로 올라왔다. 대인공포증에 차라리 감옥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유배자 신세로 해외를 떠돌 때는 한국 쪽 하늘을 보며 하루 네 번 108배를 했다. 그러다 다짐한다. “목숨만은 건졌으니 남은 인생은 속죄하는 데 쓰겠다.” 필생의 과업으로 줄기세포 실용화 논문을 완성, 국민에게 바치겠다는 약속이다.

다행히 이 과업에 서울대연구소에서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동참했다. 동티모르 지원사업으로 인연을 맺은 박병수 수암장학재단 이사장도 사재 수십억원을 내놓았다. 전신화상 남편을 둔 사업가 아내가 5억원을 기부하는 등 후원자들의 눈물겨운 지원도 있었다. 실험실 안으로 돌아와 매진한 끝에 올 1월 ‘인간체세포 핵이식으로 만든 배아줄기 세포주’가 미국 특허를 따냈다. 미국 특허는 곧 세계 특허를 의미한다. 데이터 조작이 드러난 연구자라는 따가운 시선과 홈어드밴티지를 누리는 미국 연구팀(오리건 보건과학대)을 제치고 올린 성과여서 더욱 값지다.

‘황우석 파동’을 겪은 지도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7년여를 끌어온 법적 판결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결론 났다. 서울대 복직 판결은 3심서 뒤집혀 어렵게 됐다. 그동안 우리는 빨리 가려고 남의 밭을 밟고 지나간 황우석에게서 ‘소를 빼앗는’ 식의 가혹한 심판을 했다. 법원이 내린 양형과 견주면 감내하기 어려운 단죄였다.

황우석과 겹쳐지는 인물이 안현수다. 안현수는 파벌싸움과 부상, 소속팀 해체로 낭인처럼 떠돌다 재기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인 러시아로 귀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8년 만에 쇼트트랙의 황제 자리를 되찾고 러시아의 영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만약 황우석이 한국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줄기세포 강국을 꿈꾸는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로 귀화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미국 특허도, 미래의 성장동력인 생명공학 기술의 주도권도 이들 나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과는 비교도 안 되는 타격이다. 부활한 안현수는 러시아에 영광을 안겼다. 황우석은 한국에서 재기해 난치병 환자의 희망이 되도록 기회를 주자. 진정한 속죄가 되도록.

문호진 논설위원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