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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먼다큐> 전세계 명품백 8% 그의 손에서 탄생…‘로맨티스트’ 박은관 시몬느 회장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전세계 명품 핸드백의 8%가 그의 손에서 탄생한다. 마이클코어스, 버버리, 코치, DKNY, 마크제이콥스, 토리버치 등 내로라하는 명품업체들이 주요 거래처다. 핸드백제조자설계생산(ODMㆍ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업체인 (주)시몬느는 1987년 설립한 이래 작년엔 매출 6371억, 순익은 1106억을 기록했다(2013년 6월 기준). 순이익률 17%로 삼성전자(13.5%ㆍ2013년 6월 기준)보다 높다. 이렇듯 눈부신 실적을 자랑하는 (주)시몬느의 박은관(58) 회장은 어떤 사람일까. 깐깐하고 치밀한 기업인 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직접 만나본 그는 로맨티스트에 가까웠다. 


▶아내의 이름을 딴 회사…그리고 0914= ‘시몬느’는 프랑스에서 여자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이름이다. 독일어론 ‘지몬’으로 읽히고, ‘당신’ 혹은 ‘이상형’이라는 뜻이다. 회사이름 시몬느는 사실 아내의 애칭이다. 연애시절부터 불렀던 별명같은 이름이 사명이 됐다. “핸드백이나 패션제품을 다루는 회사라고 하니, 외국 친구들이 네 아내 이름이 제격이라고 해서 붙였다”고 설명하지만 아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아니었으면 80년대에 사명으로 쓸 엄두나 냈을까. “맞다. 처음 사명등록을 하러 갔더니 이게 회사이름이냐고 여러번 물어보더라” 호탕한 웃음이 돌아왔다.

로맨티스트의 면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5년 9월 14일에 론칭하는 (주)시몬느의 자체브랜드 ‘0914’는 박회장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숫자다. 1984년 9월 14일. 당시 29세의 청년이던 박 회장은 전날 꾼 꿈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싱숭생숭했단다. 4년 전 헤어졌던 여자친구와 재회하는 꿈을 꿨기 때문이다. 작은 무역회사에 근무하던 그는 점심으로 명동의 ‘금강 섞어찌개’에서 부대찌개를 먹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회사를 ‘땡땡이’ 치기로 결심한다. 옛 여자친구와 자주갔던 경복궁을 한바퀴 돌고 당시 서울에서 최초로 원두커피를 소개했던 카페 ‘준(JUNE)’에 들른다. “한 세 시쯤 됐을 겁니다. 정말 꿈에서 처럼 그 친구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예요. 머리가 쭈뼛 서고 허리에서 전기가 찌릿찌릿 오는데…” 그 이후, 그는 종교는 없지만 ‘카르마’는 믿는다. 한마디로 9월 14일은 ‘전기 에너지가 열 에너지로 바뀐 날’이다. ODM업체인 (주)시몬느가 자체 브랜드로 정한 ‘0914’는 이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의미를 담은 셈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평생의 업적을 바치는 가장 멋진 세레나데다. 


▶바다 사나이, 핸드백에 빠지다= 박 회장이 원래 핸드백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집안환경도 패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친은 원양어업을 하던 사업가였고, 박 회장도 어릴적부터 방학때마다 이런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다. 서해 섬이나 남 중국해, 동 중국해, 북 태평양을 짧게는 2주, 길게는 4주씩 다녀왔다. 가끔 볼 수 있었던 파시(波市ㆍ바다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런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부친의 회사에 들어가기 전, 사회생활을 해보겠다며 무역회사에 입사한다. ‘청산’이라는 핸드백 제조회사였다. 처음에는 무엇을 파는 회사인 줄도 모를 정도였다.

입사 이듬해에 이탈리아 피렌체로 출장을 가게된다. 이 출장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박 회장은 당시의 문화적 충격을 잊지 못한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책으로만 읽던 거장들의 작품을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접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매장에 가니 남성바지가 형형색색 다양했다” 그 길로 같은 스타일 바지를 노란색, 오렌지색, 초록색 등 5벌, 폴로 티 형태의 티셔츠를 11벌을 사서 돌아왔다. 그렇게 점점 디자인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3년만 하기로 했던 ‘사서 고생’은 6년 6개월이 됐다. 87년 퇴사한 그는 자신의 회사를 세운다.

무엇이 그다지도 매력적이었을까. “금융계나 산업계로 간 동기들이 200호 300호짜리 그림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면 내 그림은 20호 30호다. 작지만 내 마음대로 내가 끝까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라며 “게다가, 내가 만든 핸드백을 6개월만 지나면 전 세계 어딜가도 여성들이 들고다니니 신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가방에 동시대의 헤리티지를 담다=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뉴욕타임즈에서 ‘서울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은 핸드백 박물관이 있다. 건물 모양도 가방처럼 생긴 이곳은 세계 최초의 핸드백 박물관이자 (주)시몬느의 0914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전시관엔 핸드백 제작부터 역사, 각 브랜드별 제품군이 갖춰져 있어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지하의 갤러리에선 핸드백을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한 ‘백 스테이지(bag stage)’전이 진행된다.

‘백 스테이지’전은 0914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가방에 관한 9번의 전시로 구성됐다. 그 첫 시작으로 작년엔 ‘bag is psycology’라는 이름아래 여성에게 가방이 주는 의미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올해는 남성들에게 가방이란 무엇인지를 알아본 ‘bag is history’전으로 또 한번 집중조명을 받았다. 이후로도 과학ㆍ음악ㆍ문학 등으로 가방을 분석하는 총 7번의 전시가 더 예정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많이 하는 아티스트 콜라보 형태, 즉 예술가에게 상품을 모티브로 제품을 만들어서 아트 프로모션 하기는 싫었다. 남들이 많이 하기도 했고, 0914 헤리티지를 구축하는데 상품을 먼저 내비치기보다 핸드백의 의미, 본질,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박회장의 바람처럼 전시에는 (주)시몬느가 없다. 오로지 핸드백만이 있다.

백여년이 넘는 역사를 헤리티지로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와 달리 현시대 브랜드가 헤리티지를 구축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오래된 브랜드를 인수한 뒤 이름을 바꿀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회장이 내린 결론은 한 회사의 경영자이기 전에 인문학도로서의 면모가 보인다. 가방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그 결과를 브랜드에 녹여내겠다는 계획은 가장 올바르고, 가장 느린, 그리고 가장 정도에 가까운 해법일 것이다.

▶ODM으론 부족…100년을 바라보다= (주)시몬느는 2년안에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박회장은 1조원 규모를 제품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캐파로 보고있다. 그렇지만 ODM만으론 미래성장동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박회장의 눈은 이미 10년 뒤를 바라보고 있다.

먼저 브랜드 인큐베이팅이다. 작은 컨템포러리브랜드에 지분참여하고, 제품 생산부터 품질 관리까지 일괄 지원하는 형태다. 시몬느의 핵심가치를 반영해 브랜드가 성공하면 IPO를 통해 수익을 올린다. 박회장은 다섯개 브랜드 중에 한 개만 성공해도 투자한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봤다.

다음은 시몬느 인베스트다. 가방제조만을 외길로 33년을 걸어온 회사가 자산운영사를 오픈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 시발점은 주요 고객인 마이클코어스가 제작년 IPO를 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미국 금융계는 시가총액 20조에 달하는 마이클코어스의 성공 배경으로 메인 서플라이어인 ‘시몬느’를 지목했다. 이후 각종 사모펀드에서 전략적 투자자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으면서 자산운영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후 국내 투자기관에서도 요청을 받았다. “궁극적으로 2~3년안에 국내기관과 함께 펀드레이징 해서 브랜드 한개를 키우려고한다. 브랜드 M&A를 통해 가치를 키워나갈 것”이라는 박회장은 ODM만으론 100년 기업이 한계가 있다며, 자본시장의 논리와 구조를 등에업고 커야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자체 브랜드다. 박은관 회장은 이젠 아시아의 국적을 지닌 명품 브랜드가 나올때가 됐다고 보고 있었다. “시몬느는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가능한 회사다. 15년~20년 보고 브랜드를 키울 것이다. 시몬느가 그 역할을 해야할 의무도 있고 권리도 있다”

는 그의 말엔 기업가의 자부심과 뚝심이 읽혔다. 머지 않았다. 당장 1년여 뒤면 그 시작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인터뷰 마지막까지 영민한 로맨티스트의 눈은 부드럽게 빛났다.

vicky@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ah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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