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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박승윤> 빅토르 안, 한국기업의 미래?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빅토르 안이 한국 사회에 거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그의 모습은 한국 사회를 엄중한 자기 검열에 들게 했다. 당장 체육계의 고질적인 파벌주의 폐해가 파헤쳐질 분위기다. 하지만 즉물적 대응으로 희생양을 찾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인색한 것도 우리의 자화상이다. 안 선수가 몰고 온 돌풍은 한국 사회가 장차 닥칠 태풍의 전조일 수 있다. 안 선수의 인터뷰 내용 중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기 위해 러시아로 왔다. 그 선택이 틀리지 않은 것을 보여주었다.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는 말이 가슴에 꽂힌다.

조국을 등지고 국적을 바꾼 빅토르 안의 우승에 환호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국민들의 변화된 시각도 예사롭지 않다. 왜곡된 환경에서조차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도리라는 산업화 시대의 프레임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 자녀들을 중고생 때부터 해외에 유학 보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력을 키우고 토론을 가르치는 ‘교육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서다. 그래도 예전에는 해외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은 국내에서 찾으려 노력했다. 국내의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해외유학을 갔다. 그런데 요즘은 졸업 후에도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아예 해외에서 직장을 찾고 가정을 꾸리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부모들도 자녀들이 어느 나라에서든 제대로 정착만 하면 고마워한다. 나중에 자신의 무덤을 돌보고 제사상을 차려주는 것보다 자식이 제 꿈을 펼치기를 바라는 심정이 더 강하다.

기업들은 어떤가. 역대 정부는 기업들의 경영에 걸림돌이 되는 전봇대를 뽑고,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여전히 머나먼 이상향이다. 국회 국정감사 때면 특별한 현안이 없는 기업의 대표도 줄소환되는 등 한국 기업들은 정치적 외풍과 불합리한 규제, 강성 노조 등에 치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용히 해외로 발길을 돌린다.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해외생산 비중은 60~70%에 달한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앞다퉈 금융ㆍ세제 혜택을 제시하며 우리의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는 국가들이 너무나 많다. 미국의 칼럼리스트 아론 백은 최근 “한국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는 너무 큰 존재”라며 “미국과 같은 증시에 상장하면 훨씬 많은 유동성과 투자자를 확보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에 세계 시장으로 나오라는 유혹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차단하려면 우물 안에 머물러 있는 우리네 시각을 세계로 넓혀 글로벌 체제에서 우리 기업들이 제대로 경쟁해 실력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끼리 ‘많이 가졌으니 내놓으라’며 로컬룰을 적용해 윽박지르는 것은, 외국기업만 좋은 일시키고 오히려 불공정 경쟁을 유발한다. 그러다 보면 안현수가 러시아로 갔듯,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 공장에 머물지 않고 본사까지 옮기는 대기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박승윤 산업부장 parks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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