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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조문술> 통일대박,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통일 대박’이란 환상이 경제계에서도 꿈틀대고 있다. 때마침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도 한반도 통일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경제적 관점의 통일론이란 그 지적 밑천이 뻔한 것이긴 하지만, 통일의 과정과 결과를 수치로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정치역학보다 훨씬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잠자고 있던 관념을 일깨우는 것은 이런 구체성이다. 환상도 돈벌이 문제와 결부되는 순간 빠르게 실상이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등 수백조원에 이를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통일 이후에 대한 상상이 또 필요하다. 보다 커진 공동체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이데아를 만들어 내야 한다. 통일 이후 불거질 수 있는 갈등을 잠재우는 수단은 바로 이런 공동의 목표다. 공통의 지향점은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을 일구는 가장 효과적인 설정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이혼 상태는 60년이 넘었다. 우리가 60여년 분단에서 배운 게 하나도 없다고?

조금 억척스런 긍정론으로 보자. 우리는 휴전이라는 장기적 대치상태에 있으면서 세계 최고의 갈등 관리기술을 익혔다. 간간이 도발과 무력충돌이 이어졌지만 대체로 갈등은 극단적 수위를 넘지 않았다.

외세에 의해 강요된 군비 경쟁과 과도한 긴장 속에서 일촉즉발의, 누란의,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남북은 극적 타협을 모색하기도 했다. 6ㆍ25전쟁 후 그 팽팽한 이념적 대립 속에서 휴전 19년 만인 1972년 7ㆍ4 공동성명이 나왔고, 1994년 남북 정상회담 추진에 이어 2000년 6ㆍ15 공동선언까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양측의 선언은 실천을 담보할 수단이 없다는 측면에서 공허하긴 했다. 하지만 선언을 도출하기까지 서로 간의 진지한 노력은 인정할 만하다. 이는 향후 통일 과정에서 커다란 자산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남북은 지금까지의 선언을 넘어서는 수준의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가능하다. 막말로 지금보다 더 나빠질 상황은 발생할 게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북한이 낙후되는 바람에 우리는 통일 후 전인미답에 가까운 미개발 지역도 갖게 됐다. 먼저 의식주라는 기본권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보다 인간다운 삶으로 편입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직 우리는 화해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연습은 해봤다. 1998년 소떼 방북에 이은 6ㆍ15선언은 남북이 대결이 아닌 합의라는 성숙한 상태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전제조건이 문제겠지만 남북 신뢰 프로세스는 충분히 구축 가능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다. 남북 경색을 푸는 방법은 인도주의적 지원과 경제협력뿐이다. 우리가 손을 내밀고 이익이 되는 방법을 제시할 때 상대도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선이후난(先易後難), 쉬운 것부터 하면 된다. 식량 원조로 물꼬를 트고 개성공단에는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여야 한다. 제2, 제3 개성공단을 짓고 나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도 절로 실현될 수 있다. 유연성은 기본적으로 갈등을 예방하고 해소하는 자세다. 우리의 고귀한 내일이 마냥 방치돼선 안 된다.
 

조문술 산업부 차장 freihe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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