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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강석기> 젊은 과학자의 부활
획기적 만능줄기세포 발견
서른살 日여성과학자의 성공기
‘믿을 수 없는’ 가설 실현 뒤엔
선배 과학자의 관용·혜안이…


1930년 미국 칼텍(캘리포니아공대)의 물리학자 로버트 밀리컨 교수는 대학원생 칼 앤더슨에게 쉽지 않은 연구과제를 줬다. 우주선(cosmic ray)을 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자석을 만들어 우주선이 어떤 입자로 이뤄져 있는지 밝혀보라는 것. 25세 청년 앤더슨은 인근 항공실험실의 도움을 받아 장치를 만들어 실험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자로 추정되는 입자 외에도 휘어지는 정도는 비슷한데 방향이 반대인 입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추가 실험을 통해 앤더슨은 이 입자가 전자와 모든 특성은 같으나 전하만 반대인 새로운 입자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음전하인 전자와 양전하인 양성자만 알려져 있었는데, 양성자는 전자보다 2000배 가까이 더 무거웠다. 그럼에도 밀리컨 교수는 이 입자가 양성자라고 우겼고, 앤더슨은 1923년 노벨상 수상자인 지도교수의 해석에 승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결과를 1932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해버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앤더슨이 발견한 입자는 그보다 4년 전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폴 디랙이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결합한 새로운 이론을 만들며 존재를 예측한 바로 그 입자임이 밝혀졌다. 양전자는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앤더슨은 이 공로로 1936년 31세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51년 가을,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에 꺼벙하게 생긴 미국 청년이 들어왔다. 바이러스 연구로 22세 때 일찌감치 박사학위를 받은 왓슨은 단백질 구조 연구를 하고 싶어 이 실험실 문을 두드린 것. 이곳에는 뒤늦게 박사학위에 들어온 35세의 떠뻐리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이 있었다. 당시 페루츠 박사팀은 10수년째 적혈구에 있는 산소 운반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둘은 별 도움이 안 됐다. 결국 두 사람은 핵심 프로젝트에서 소외된 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거리를 찾아 당시 유전물질로 떠오르고 있던 DNA 구조를 밝히기로 했다. 이들이 1953년 DNA이중나선구조를 밝히는 데 성공한 주인공이다.

젊은 과학자의 좌충우돌 성공기는 이처럼 과학사에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의 31세 줄기세포과학자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가 생명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발견을 해서 화제다. 이미 분화된 성체 세포에 약산 처리 같은 물리적인 자극만 줘도 세포가 미분화 상태로 돌아가 뇌, 피부, 폐, 간 같은 다양한 조직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줄기세포가 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는 과거 황우석 박사팀이 시도했던 복제배아줄기세포나 2006년 일본 연구진이 유전자 4개를 넣어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보다 훨씬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같지만 오보카타 박사팀의 연구 결과는 ‘네이처’ 1월 30일자에 논문 두 편으로 나뉘어 실렸다.

오보카타 박사가 처음 아이디어를 얻은 건 하버드대로 파견을 가 연구를 하던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배양된 세포가 폭이 좁은 모세관을 통과한 뒤 크기가 줄기세포만하게 작아진다는 걸 우연히 발견한 오보카타는 이런 물리적 스트레스가 세포의 성격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시키지도 않은 실험을 시작한 것. 리켄 발생생물학센터에 들어간 오보타카는 상사인 사사이 요시키 박사를 집요하게 설득했고, 센터는 지난해 그에게 세포 리프로그래밍 실험실을 맡겼다. 오보타카 박사는 상당히 튀는 스타일로 실험실 벽을 핑크색과 노란색을 칠했고 실험할 때는 하얀 실험복 대신 앞치마를 두른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주위 반응에도 5년간 꿋꿋하게 실험을 해온 오보타카 박사의 집념도 놀랍지만, 갓 서른인 여성 과학자의 대담한 가설을 믿고 실험실을 맡긴 리켄의 선배 과학자의 관용과 혜안이 더 놀랍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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