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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소치올림픽 100배 즐기는 법
4년 전 밴쿠버 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에 ‘깜짝 금메달’이 나왔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에서 예상대로 ‘빙속황제’ 네덜란드의 스벤 크라머르가 1위로 들어왔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실격 판정으로 금메달은 이승훈의 것이 됐다. 머쓱하게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 곁에 크라머르의 동료이자 동메달리스트인 보프 더용이 있었다. 보프 더용은 은메달리스트에게 눈빛 신호를 보내더니 이승훈에게 목마를 태워주며 축하해 줬다. 이 낯선 광경에 국내 네티즌들은 열광했다. ‘대인배 보프 더용’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당연했다.

며칠 전 크라머르는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 경기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한국에 첫 메달을 안길 것으로 기대됐던 이승훈은 12위로 부진했다. 경기 뒤 이승훈은 침통한 표정으로 “죄송합니다”란 한 마디 말만 남겼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자리, 2등이란 어마어마한 결과를 받은 선수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경우도 적잖다. 밴쿠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경기 시상대에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김연아는 기쁨이 섞인 눈물을 보였다. 홈그라운드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조애니 로셰트도 밝게 웃었다. 하지만 김연아와 숙명적인 동갑내기 경쟁자로 은메달리스트인 아사다 마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아사다의 경우처럼 은메달로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죄인이 된 듯한 분위기가 간간히 연출된다. 반짝이는 은빛 메달은 꼬리를 내리고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선수들의 표정으로 메달순위를 정한다면 1등이 금메달, 2등이 동메달, 은메달은 3등이거나 등외수준이다.

‘2인자의 슬픔’까지 느껴지는 이 장면에는 과학적인 해석이 뒤따른다. 얘길 들어보면 맞는 듯싶다. 비교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준거점’ 차이가 이 장면 연출의 과학이라는 주장이다. 동메달을 딴 선수들의 준거점은 메달을 따지 못한 사람, 은메달은 금메달리스트다. 동메달은 아래를 보고, 은메달은 위를 보고 있으니 누가 더 행복한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다. ‘아래를 보고 살라’는 앞선 사람들의 지혜가 귀에 맴돌지만 실제로는 어렵다는 것을 대부분 알 것이다. ‘스케이트 칼날’ 한 끗 차이로 1등을 놓친 2인자의 슬픔은 오래도록 상처로 남게 된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한국의 ‘금메달 지상주의’는 여전하다. 혹독한 환경에서 한 걸음이라도 빠른 사람이 굶어죽지 않았을 선조들의 DNA가 우리 몸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특히 ‘압축성장’ 시기엔 1등 지상주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메달 색깔에만 연연하다보면 스포츠가 주는 거대한 드라마의 대부분을 놓칠지도 모른다. 소치 올림픽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는 선수들이 훨씬 많다. 그들의 땀과 눈물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메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회만 보겠다면 드라마가 주는 재미의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다.

이승훈, 그가 죄송해야 할 일은 아니란 얘기다. ‘대인배’가 되면 올림픽은 훨씬 더 즐거워진다.

전창협 디지털콘텐츠편집장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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