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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 홍길용> 좌절된 삼성 도전과 ‘벌거숭이 임금님’
삼성이 추진하던 대학총장 추천제가 백지화됐다. 대학을 서열화한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결과다.

대학의 서열은 원래 없을까? 세상 모든 것에는 어떤 형태로든 서열이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언론이 전공별로 대학순위를 평가한다. 우리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서열이 있다. 삼성이 이를 새로 만든 것도 아니다.

기업이 대학 서열화를 조장할 이유도 없다. 기업에 필요한 것은 회사에 기여할 인재다. 동창회에 나올 후배가 아니다. 추천 방법과 인원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비판은 일리가 있다. 그래도 서열화를 부추겼다고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우리 기업의 처지는 다급하다. 선진국의 역습과 신흥국의 추격이 거세다. 생존을 위해서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인재가 절실하다. 모든 대학, 학생, 국민들을 만족시킬 ‘이데아(idea)’를 찾느라 새 인재 찾기를 늦출 틈이 없다.

필요한 인재를 키워 달라는 기업들의 갈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대학은 달라지지 않았다. 창의성과 인성교육은 뒷전이다. 학생들은 스펙(spec)에만 매달렸다. 삼성이 과감히 나선 것은 그만큼 다급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은 1957년 국내 최초로 공채제도를 도입하고, 1995년에는 학력ㆍ성별 차별까지 철폐했다. 삼성을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조차도, 삼성이 학연이나 지연으로 사람을 쓰지 않는다는 데는 동의한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과정에도 이 같은 인사혁신이 밑거름이 됐다. 그래서 삼성의 이번 시도에 조용히 기대를 거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삼성공화국론’ ‘자본의 대학 지배’ ‘호남ㆍ여대 차별론’ 등에 부딪혀 이 시도는 좌절됐다. 이 과정에서 ‘스펙 지상주의’ ‘의대 제일주의’ ‘이공계 홀대’ ‘인문학의 위기’ 등에 대한 대안 제시는 없었다.

삼성은 유능한 인재를 뽑을 기회를, 대학은 창의적 인재를 키울 기회를 잃게 됐다. 대학 서열은 우리 의식 속에 여전하다. 기업들에는 ‘대학 서열화 금지’라는 금기만 더해졌다. 이젠 멀쩡한 기업들조차 ‘벌거숭이 임금님’ 행세를 해야 할 판이다.

홍길용 산업부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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