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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민한 촉으로 그린 석민우의 자화상…절실함 속 뜻밖의 상상력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사람의 얼굴에 검은 점들이 무수히 찍혀 있다. 눈, 코,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크고 작은 비정형의 점들이 뒤덮여 있으니 무언가 심상치 않다. “어, 무슨 그림이 저래?”하고 고개를 젓게 만드는 기이한 그림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낯설면서도 엉뚱한 자화상을 그린 이는 미국 시카고에 체류 중인 화가 석민우(29, Suk MinWoo)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고교 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현재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 스쿨(SAIC)에 적을 두고 있는 석민우는 특별한 형상을 정해놓지 않은 채, 선(線)에 집중해가며 그림 그리길 즐긴다.

석민우의 드로잉 ‘자화상 ‘. 종이에 펜.

마치 무의식 속에 감춰진 이미지를 탐구하듯 드로잉을 하는 것. 그 영감을 따라가며 그린 석민우의 드로잉 연작은 작가의 예민한 촉(觸)을, 남다른 상상력을 오롯이 보여준다.

작가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특별한 목적 없이 낙서하듯 종이에 펜으로 이것 저것 그리다 보면 머릿 속에 어느 순간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것을 붙잡고, 그 영감에 쫓아 선을 끌어내면 뜻밖에도 만족스런 그림이 나오곤 한다. 드로잉의 묘미는 바로 그런데 있는 것같다”고 했다.

석민우의 드로잉 ‘무제‘. 종이에 펜.

이같은 작업을 통해 석민우는 자화상을 여러 점 그렸다. 특히 검은 점들이 얼굴과 머리를 관통하며, 화폭을 상하로 온통 뒤덮은 그림은 그 강렬함이 보는 이의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외로움과 번뇌 그리고 무수한 상념 속에 빠진 한 인간의 초상을 절실하게 표현한 그림이다.

인간과 개의 형상이 결합된 듯한 자화상 또한 종이에 그린 드로잉이다. 얼굴을 그리기 위해 종이에 인물을 묘사했으나 흡족하지 않았던 화가는 지우개로 그림을 거칠게 지웠다. 그렇게 벗겨진 거친 표면을 보니, 웅크린채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잔뜩 긴장된 눈을 그려넣고, 코도 그려넣다 보니 반인반수의 형상이 됐다는 것.

석민우의 드로잉 ‘무제'. 종이에 펜.

부러진 두 발 대신, 손으로 걷는 개코 형상의 인간은 머리에 빗물까지 맞고 있어 더욱 고독하고 막막해 보인다. 정신적으로 한없이 위축된 나머지, 코너에 몰렸던 순간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이 검은 인물에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이처럼 석민우는 흰 종이는 물론, 포스트카드, 책 표지 등 여러 매체에 다양한 드로잉을 시도하고 있다. 주로 펜으로 작업하지만 때론 물감 등도 곁들이며 변화를 추구한다. 새(鳥)를 비롯해 각종 동물, 기이한 생명체, 부처, 인간을 그린 그의 드로잉 연작은 다분히 낯설고 알쏭달쏭하지만, 절실함 속에 깃든 풍부한 감성과 독특한 상상력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석민우의 드로잉 ‘New Buddha’. 종이에 펜과 물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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