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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변호인이 준 교훈, ‘소통이 답이다’
러닝타임 127분은 후딱 지났다. 엔딩 자막이 올라간다. 그런데도 객석 대부분 사람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동도 없다. 옆 사람 어깨가 약간 들썩하더니, 약간의 울먹임이 전해진다. 아내다. 살짝 훔쳐보니 감동을 받았는지 어둠 속에서도 눈시울이 붉혀져 있다. 손등으로 눈가를 잠깐 훔친다. 영화 ‘변호인’이 끝난 직후의 분위기다.

얼마 전 아내와 영화를 봤다. 모처럼의 용산 CGV 나들이. 연애 때 많은 영화를 같이 봤지만, 아내가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아내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영화가 끝난 후 그냥 손을 잡은채 아무 말 않고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둘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입을 연 것은 집 앞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눈물까지 흘리고, 그렇게 감동적이었어?”

“그냥…. 불의에 대해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거 있잖아?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도 나고….”

솔직히 놀랐다. 아내는 평범한 주부이자, 직장인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에 별로 흥미가 없다. (이 글을 아내가 본다면 ‘날 뭐로 알고 그래?’라며 화를 낼지 모르겠지만) 아내의 관심은 주부로서의 일 해방이 가장 첫 번째고, 굳이 거론하자면 드라마나 연예인 뒷소식 등이다. 적어도 결혼생활 18년 동안은 그랬다.

그런 아내가 시사점을 얻고 감동을 받을 정도면 보통 영화는 아니다. 변호인 영화가 700만 관객을 넘고, 800만을 향해 줄달음치고, 1000만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가 아내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받은 ‘울컥하는 느낌’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과 함께 보통사람이 느끼는 억압에 대한 막연한 저항, 권위에 대한 근원적 거부감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졸 변호사와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했기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곳곳에서 연상되는 ‘추억 효과’도 무시 못 할 것 같다.

변호인이 터뜨린 ‘대박’은 이렇듯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훌륭히 소화했기 때문이다. 시계바늘이 거꾸로 간 듯한 불통의 시대, 양극화 시대 앞에서 대중들의 불만과 두려움의 틈새를 변호인이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칭송할 생각은 없다. 기자는 노무현정부 때 국회 정치반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 잘 알고, 느끼는 감정도 복잡하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에 일관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고졸에 대한 콤플렉스를 꾸준히 노출했고, 비주류에서 스스로 나오기를 거부했다. 검사와의 대화에서는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며 포용심을 잃었고, 기자실에 대못을 박아 언론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갑오년 새해벽두에 화려하게 등장하고 재평가를 받는 것에 이견은 없지만, ‘불통의 시대’를 자초했던 인물이라는 기자의 개인적 평가는 달라질 것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취임 후 처음이다. 기자회견은 대국민 소통 창구 중 하나라는 점에서 취임 10개월이 지나도록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의 불통을 의미한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불통 이미지를 벗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는 아니었으면 한다.

변호인이 주는 교훈을 기억했으면 한다. “소통이 없으면 희망은 없다.”

김영상 사회부장/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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