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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단의 아픔을 자연으로 치유하다…강원도 화천을 가다
[헤럴드경제=이태형기자]겨울철 혹한기를 맞아 1, 2월 ‘길 프로젝트’가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 걷거나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가다보니 동장군의 맹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잠시 연재를 중단하는 이유이다. ‘길 프로젝트’라는 테마를 내려놓을 뿐 기존의 자유 여행 컨셉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한반도를 소개하는 여정은 계속된다.

처음 강원도 화천을 여행지로 선정한 것은 화천에 위치한 ‘한뼘길’을 걸어볼 심산에서였다. 그러나 화천군청에 문의했더니 찾는 이가 드물어 행정선을 따로 띄워야 하고, 길이 험해서 눈 쌓인 겨울철에 찾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회신이 돌아왔다.

그래도 강행할까 했지만 그렇게 다녀오더라도 누가 다시 찾을 것인가라는 생각에 미치자 동선 변경이 불가피했다. 화천 일대 둘러볼 만한 곳을 몇 군데 정하고 여유 있게 겨울 산천을 만끽해보는 일정으로 변경했다. 지난 12월20일 찾은 화천은 앞서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았다. 도로는 제설작업을 했지만, 빙판길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오도카니 서 있던 고라니 한 마리가 다가오는 차량을 발견하고는 한번 눈길을 주고 이내 숲속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강원도 화천-<길>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분단의 아픔이 서린 곳=강원도 화천은 비무장지대와 맞닿아 있는 군사작전지역이다. 지나가는 길목마다 군부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초등학교 울타리에는 ‘연평도 포격 3주기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힌 플랑카드가 지나가는 행인도 없이 덩그렇게 걸려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 속에서 잠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베트남전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1964년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된 1973년까지 한국은 8년간에 걸쳐 베트남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해 국군을 파견했다. 기후도 다르고 지형도 달랐기 때문에 군인들을 현지로 바로 보낼 수는 없었다. 적응 훈련을 위해 베트남과 유사한 지형을 만들어 놓고 군인들을 훈련시켰던 곳이 화천군 오음리 일대였다. 훈련을 받은 이들은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베트남 전장터로 나갔다. 이들이 흘린 피와 땀은 애석하게도 베트남 공산화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쟁이 남긴 후유증은 한국 사회에 큰 옹이를 남겼다. 고엽제피해로 평생을 고생하는 이들 중 많은 수가 이미 생을 달리 했지만, 남은 이들은 여전히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데올로기 대립이 치열했던 냉전 시기에 베트남 분단을 막으려 했던 한국이지만, 한국은 이미 분단국가의 굴레를 쓰고 있었다. 화천과 양구에 걸쳐 있는 평화의댐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군사정부 시절 북한 금강산댐의 물공격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1986년 10월에 착공한 뒤 1단계, 2단계 공사를 끝내고 현재 3단계 치수능력증대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수공(水攻) 위험론을 발표하고 이를 언론들이 집중 보도했다. 전 국민이 댐 건설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섰고,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다니던 기자도 몇 차례에 걸쳐 성금을 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나서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물공격이 과장됐다는 감사원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어린 마음에도 속았다는 기분에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낸 성금으로 만들어진 댐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됐다. 지금은 물박물관이 지어졌고, ‘세계평화의 종(鐘)공원’이 조성돼 있어 오히려 평화로워보였다. 댐 본래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철저한 공사 감독과 관리가 이뤄지길 바라며 발길을 돌렸다.

산소길-화천월성체육공원.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자연 속에서 힐링=평화의댐에서 화천읍으로 오는 길에는 파로호가 왼편에 이어져 있다. 파로호(破虜湖). 한자 그대로 뜻풀이를 하면, 오랑캐를 물리친 호수라는 의미이다. 1951년 5월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 때 국군 6사단과 해병 1연대가 중공군 10ㆍ25ㆍ27군을 화천저수지에 수장시켰다. 보고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선을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친필 휘호를 남겼다. 그 후부터 화천저수지는 파로호로 불리게 됐다.

이 곳에 건립된 화천댐은 북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댐이다. 화천수력발전소는 한국 유일의 댐 수로식 발전소로, 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화천댐은 1940년부터 전력을 공급한 국가 주요 시설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파로호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파로호전망대에 올라볼 것을 추천한다. 평소 운동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살짝 힘들 수 있는 오르막길을 올라 전망대에 서면 마음이 진정되면서 안정을 찾게 된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딴산 공원이다.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빙벽은 주변 경관과 다소 이질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나름 운치가 있다. 빙벽 앞에는 빙판이 조성돼 있어 아이들이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고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좀 더 과감한 도전을 하고 싶은 이들은 그 앞에 마련해 놓은 캠핑장을 이용해도 괜찮을 듯 하다. 아빠와 아들이 난로 하나에 의지하며 부자지간의 정을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도 좋을 법하다. 실제로 화천 산천어축제 기간에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부자(父子)가 한둘씩 꼭 있다고 한다.

‘분단의 아픔이 희망의 바람으로 불어오는 곳’. 화천을 소개한 대형 광고판에 적힌 문구이다. 누가 지었는지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고, 그 아픔을 지척에서 느끼고 있는 화천이지만 이 곳의 자연은 무위(無爲)하고 영구(永久)함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thlee@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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