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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치매 노인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치매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기업체 간부인 윤모 씨는 최근 직장을 그만두었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의 거친 행동과 잦은 가출로 늘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잠시 한눈을 팔다보면 엉뚱한 곳에서 노모를 발견하는 일이 다반사다. 며느리에게는 ‘도둑년’이란 말을 하는 등 심하게 대하면서도 아들에게는 얌전한 노모를 위해 그는 자신이 돌보기로 자청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한 집 건너 치매 환자가 있을 정도로 노인 치매는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왜 갑자기 치매 환자가 늘어난 것일까. 동경대 의학부 교수를 거쳐 국립환경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원로의사 오이 겐 박사의 저서 ‘치매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윤출판사)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치매는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져 불안과 초조, 우울증을 일으키며 망상과 환각, 거친행동 등을 하는데,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약물에 의해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치매 자체를 완치시켜 지성과 인격을 되찾는 것은 현대의학으로는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평소 읽고 쓰기를 하고 계산을 하거나 머리를 사용하면 치매가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도 의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주위를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는 치매는 불가능한 것일까. 겐 박사는 책에서 치명적 질환의 치매도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주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치매에는 기억을 중심으로 하는 인지능력(지능)이 저하되는 중심증상과 피해망상, 야간 섬망, 환각, 공격적 인격 변화 등의 주변 증상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지능이 저하된 노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나쁜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환각, 망상 등 정신 증상의 발현 빈도는 지능 저하에 따른 환경 적응능력의 감소 정도와 나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크기에 비례한다.

겐 박사는 인간관계가 ‘좋은 군’과 ‘나쁜 군’을 나눠 지능저하의 각 단계에서 정신증상 발현을 조사했다. 결과는 큰 차이을 보였다. ‘좋은 군’에서의 발현율은 가벼운 기능저하군에서 10%, 중등도 저하군에서는 20%에 불과했으나 ‘나쁜 군 ’에서는 각각 30%, 60%로 높았다.

저자가 오키나와현 사시키에서 조사한 보고서는 환경만 좋다면 지능이 저하된 노인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주변 증상을 보이지 않고 평온하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겐 박사는 마을의 65세 이상 노인 708명(남 268명, 여 440명) 전원을 정신과적으로 평가했다. 이 중 명백히 ‘노인성 치매’로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이 27명(전체의 4%)이었다. 이는 도쿄의 유병률과 비슷했다. 하지만 전 증례를 통틀어 우울증, 망상, 환각, 야간 섬망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이는 도쿄의 조사결과와 확연히 구별되는 현상이었다. 도쿄에서는 ‘치매 노인’의 20%가 야간 섬망을 보이고, 절반 정도가 주변 증상이 있었다. 또한 오키나와에서는 우울증이 전혀 없었는데. 이는 미국과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미국에서는 치매 환자의 4분의 1~2분의 1 정도에서 우울증이 동반된다는 보고가 있다.

겐 박사는 사시키 마을의 이런 결과를 문화적 차이와 환경의 영향으로 본다. 사시키는 경로사상이 강하게 보존돼 있고 실제로도 노인이 정성스러운 간호와 존중을 받는 지역으로 꼽힌다. 따라서 이 지역의 노인은 정신적 갈등이 없고 설령 뇌에 기질적 변화가 생겼더라도 우울증, 환각, 망상이 발생하지 않는 단순 치매 상태에 그친다는 것이다.

치매는 주변 증상 없이 가족과 함께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순수치매를 비롯해 ‘주의 장애’라고 불리는 가상현실의 세계, 환청ㆍ환시ㆍ환각을 일으키는 사례, 젊은 시절로 돌아간 ‘회귀 인격’, 이 세상과 저 세상에 걸쳐 사는 ‘땅으로 돌아가는 과정’ ‘회춘 현상’을 보이는 다중인격 등 다양하다.

저자는 치매에서 중요한 것은 ‘연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치매는 바로 사람답게 만드는 말과 기억의 기능이 쇠퇴해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진 것이기에 불안과 스트레스 우울증의 증상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주변 사람과의 연결을 유지할 수 없는 불안의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화에 따른 기능 저하와 뚜렷한 질병이 있어도 가족을 비롯한 주변 환경과 잘 연결되어 살아있다는 감각을 갖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는 게 그의 치매 관리법이다. 임상에 바탕한 치매 노인을 통해 보는 정상과 이상의 사이, 문화와 윤리의 근원적 차이 등을 살펴 제시한 대안이 눈길을 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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