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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함영훈> “이 또한 지나가리라. 쫄지 마!” 동지와 성탄이 주는 교훈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밀양(密陽) 아리랑’엔 이런 노랫말이 있다.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허 참! 이런 무리한 요구가 또 있을까. 쌀쌀한 겨울, 황량한 산야에 그나마 피는 꽃이 동백과 매화라고는 하지만, 이들도 비닐하우스 밖이라면 음력 2월은 되어야 핀다. 동지 섣달 즉 양력으로 12월~1월에 개화하는 꽃은 거의 없다.

햇볕이 좋기로 유명한 밀양 지역, 이 아리랑 노랫말은 실현 가능성 별로 없는 무리한 주문을 담고 있다. 동지 섣달 꽃을 본다면 시쳇말로 ‘대박’이고 놀라 자빠질 일이다. “기적 같이 등장한 나를 보고 놀라 자빠지라”는 이 아낙네의 도를 넘는 요구는 자신감의 표현, 또는 사랑하는 남정네를 향한 불 타는 연정의 에너지라고 해두자.

음력 11월이 동짓달인 이유는 동지(冬至)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긴 양력 12월 21~23일 중에 찾아온다. 그로부터 삼구(三九)일 즉 27일간 북반구는 가장 추운 시절을 겪는다. 삼구의 반대 시점은 7~8월 삼복이다.


동지가 가장 긴 밤이니, 동지를 지나면 낮이 길어지고 그만큼 햇빛의 양도 많아진다. 태양, 즉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여겼던 동양 사람들은 동지를 ‘작은 설’ 즉 아세(亞歲)라고 불렀다.

중국 주나라는 동지가 설이었고, 당나라는 동지를 역법의 기점으로 삼았다. 우리 선조들도 ‘동지첨치(冬至添齒)’라고 해서 동지를 지나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 동양 제국끼리 동지사(冬至使)를 교환하는 것은 새해 외교 하례였다.

동지 팥죽도 태양과 무관치 않다. 팥이 양(陽)의 색이라 동지 긴긴밤 팥죽이나 시루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 음귀를 쫓는데 효과적이라는 믿음은 밝은 내일을 기약하려는 희망 의식이었다. 정력이 약한 것으로 알려진 호랑이 조차 긴긴밤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양기(陽氣))를 발산해 짝짓기를 감행한다고 해서 ‘호랑이 장가가는 날’로 부르기도 했다.


서양도 다르지 않았다. 페르시아에는 동양과 똑같은 동지 의식이 있었다. 태양이 부활하는 때라는 동서양의 공감대는 동지와 성탄절을 이어준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의 미사(Christe Maesse)’라는 뜻인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을 기념한 고대 로마의 ’정복 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 축제와 연관이 있다. 서기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크리스트교를 공인하자, 예수(Christ) 탄생의 의미를 기존의 태양 의식(maesse)에 얹어 성탄 축제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동지 팥죽을 성탄절에 먹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문화적 동질성이 느껴진다.

인류는 추운 겨울을 숱하게 지나왔다. 어려움과 고통은 반드시 지나갈 것을 믿기에, 동서고금 누구든 밤이 긴 동지와 성탄절에 찬란한 희망의 에너지를 충전했던 것이다. 이 엄동설한 동지 섣달에 꽃이라도 볼 듯이 말이다. 동지는 어둠의 짙은 터널이 아니라 새 출발이다. “어둡고 춥다고 쫄지말라”고 성탄과 동지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abc@heraldcorp.com

[이미지 출처=123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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