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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방만경영’보다 ‘방만정치’가 더 문제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과도한 부채’와 ‘방만경영’. 요즘 정부가 공기업에 덧씌운 멍에입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파티는 끝났다’고 표현했습니다. 공기업 직원이 과도한 임금을 받고 사업비를 흥청망청 썼다는 겁니다. 그 결과 전체 공공기관의 총 부채는 493조원으로 2008년 이후 4년만에 200조원 가량 증가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따라서 공기업에 방만경영에 대한 개선대책을 내놓고, 부채를 줄이라고 주문했습니다. 실적이 미흡하면 기관장을 해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임금 동결 혹은 삭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공기업은 비상입니다. 얼마나 큰 폭풍이 몰아칠지 걱정이 큽니다. 그런데 공기업 직원들은 방만경영 혐의에 대해 억울함을 표시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정책을 수행하다 보니 과도한 부채가 생겼는데 책임을 오로지 공기업에게만 묻는 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정부가 공기업에 방만경영 문제를 해결하라니 공기업은 하나둘 경영 내실화 방안을 발표합니다. 내용을 보면 참 안타까운 장면이 많습니다.

예를들어 이런 겁니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지난달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추진한다며 2급 이상 650명 전원의 2013년도 임금의 동결 및 반납을 결의해 16억원의 인건비를 절감하게 됐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코레일은 16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회사로 매일 이자만 12억원을 쓰고 있습니다. 임직원의 임금을 동결하고 반납해 경영 내실화를 기했다는 게 고작 이틀치 이자도 안되는 겁니다.

공기업 가운데 부채가 가장 많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올 6월말 기준으로 141조7310억원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전문직제도’가 방만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자주 욕을 먹고 있습니다. 임원 승진에서 탈락한 고참 직원이 58세 정년까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아 근무하는 겁니다. 현재 231명이 전문직으로 그동안의 업무 경험을 살려 자문 역할 등을 맡고 있습니다. 일단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아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을 방만경영이라고 보는 게 타당한지는 논외로 치고, 이들을 모두 자르고, 이 제도를 폐지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연 이 방만경영(?) 문제를 해결하는게 LH 부채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만약 이 제도를 없애면 LH직원 6000여명 가운데 3% 정도인 200여명이 줄어들어 당장 200억원 정도가 절약될 겁니다. 향후 승진못하는 고참직원은 호봉제 기준으로 오히려 월급을 더 받고 정년까지 근무하겠죠. 이러면 오히려 인건비는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당장 200억원이 절약된다고 LH의 부채문제에 도움이 될까요? 앞서 코레일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LH는 부채로 하루 이자만 123억원을 쓰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이틀치 이자도 안되는 돈을 아끼자고 수백명을 자르는게 국민경제나 회사에 도움이 되는 건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정부가 마치 하우스푸어에게 자기집 아이 사탕 사먹을 용돈 몇천원을 아껴 부채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요!

사실 정부는 상황에 따라 공기업에 고용창출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공기업의 역할이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인 만큼 이런 분위기를 타 일자리를 만드는 차원에서 수백명씩 사람을 새로 채용하기도 했습니다. 나이든 실버인력을 채용하기도 했구요. 그러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달라지면 다시 인원 구조조정을 하기도 했지만요.

공기업이 보유한 천문학적인 부채의 진짜 원인은 방만경영 보다는 정부의 무리한 정책 집행에 따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LH는 지금까지 건설경기 부양, 국민임대사업, 신도시, 혁신도시,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을 도맡아 추진하면서 부채가 쌓였습니다. 임대주택 한 채를 지으면 1억원 가까이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옵니다. 당장 이명박 정부때 보금자리주택 건설을 위해서만 13조6000억원의 금융부채를 끌어들였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09년 2조9000여억원이던 부채가 올 6월 기준 13조9000여억원으로 폭증했습니다. 전적으로 전 정부에서 추진한 4대강 사업 건설비를 조달하면서 생긴 부채입니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나 25조원의 부채를 짊어진 한국도로공사 등의 부채도 결국 정부가 요구하는 철도와 다리 등 사회기반시설을 지으면서 생긴 겁니다. 이것으로 공기업 니네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해서 해결될 사안이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공기업이 방만경영을 하는 경우도 꽤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 공기업의 천문학적 부채의 원인으로 보긴 무리입니다. 정부가 공기업에 일을 시키려면 그에 맞는 지원을 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공기업 부채 문제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고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지원을 해야한다고 설득을 해야합니다. 필요하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방만 정치’나 ‘방만 정책’을 하고 있는게 공기업 부채 문제를 더 악화시킨 건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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