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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함영훈> 전봇대에 오줌 갈기는 개와 ‘그들’의 영역 표시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한 주부의 하소연이다. 생후 3개월된 첫 번째 애완견이 집에 들어온뒤 며칠만에 배변훈련을 해서 2년여를 잘 살았는데, 둘째 강아지가 새로 전입하자 첫째 개가 온 집안에 다시 소변과 대변을 누더라는 것이다.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다. 어떨 땐 배변 패드만 쏙 빼고 그 부근에 ‘ㄷ’자 모양으로 소변을 흩뿌려 놓기도 해서, 하루에도 십수번 개의 대소변을 치우느라 힘들다고 한다.

개의 영역표시 광경은 다리를 처들어 전봇대에 오줌을 갈기는 모습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남미에 서식하는 다람쥐 원숭이, 여우와 늑대, 표범, 치타 등도 오줌 냄새로 영역을 표시한다. 이렇게 자기 땅을 표시해 두면, 큰 싸움이 날 수도 있고 반대로 괜한 싸움을 피할 수도 있다.


노루는 나무를 뿔로 비벼 생채기를 낸 뒤 자기 땅이라 흡족해 한다. 멧돼지는 땅을 파서 흙더미를 쌓아놓고, 호랑이는 대변을 곳곳에 싸둔다. 호랑이의 영역은 다소 넓어 가로 20리, 세로 20리에 이른다. 자주 다니는 길에는 오줌보다 진한 액을 뿜어 놓는다.

동물들이 영역표시에 쓰는 분비물이나 흔적의 양태는 개인정보라고 볼 수도 있다. 나중에 온 동물은 먼저 지나간 동물이 남긴 흔적을 분석해보고, 그의 덩치, 품종, 나이, 건강상태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얼룩말이나 누우는 그래서 사자가 들렀다 간 구역에는 다시 가지 않는다.

최근 멧돼지가 주택가에 출몰하자 호랑이 똥을 마을 어귀 곳곳에 뿌려두는 지자체가 생겼는데, 바로 동물의 영역표시 본능에 착안한 정책이다. 일부 농촌은 야생 동물들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농가 주변에 뿌려 놓기도 한다.


영역 표시는 동물이나 하는 짓인 줄 알았는데, 정ㆍ관계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내 정권의 흔적 남기기, 생색내기 정책, 경쟁 정당을 배척하는 언사가 난무하니 말이다.

동물 식 영역표시를 사람이 할 때 우리는 두 가지를 느낀다. 하나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상대의 영역을 인정해주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 흔적을 과도하게 남기려하다가 처절한 싸움과 갈등만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약육강식의 동물과는 다른, 금도를 지키는 합리적 영역표시 또한 인간사회의 평화를 가져오는 기본 자세가 아닐까.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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