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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한국이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인구 5000만명이 사는 대한민국을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하면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란 책의 아이디어를 빌려 ‘한국이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으로 가정해 본다. 지구마을처럼 한국이란 마을 역시 100명밖에 살지 않는다. 5000만명이면 대부분 나와 무관한 사람이지만, 100명이 사는 작은 마을로 줄여놓으니 이웃들 모두가 눈에 들어온다. 이 마을을 보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심지어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과 이웃으로 부대끼며 살았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낯설다.

여론조사회사인 한국갤럽이 11월 조사한 설문 조사로 100명이 사는 한국이란 마을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이웃을 보면 한국인들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 라면을 먹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 중 21명은 한 달에 한 번도 라면을 먹지 않는다. ‘신라면’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39명이 되지만, ‘진라면’이 가장 좋다는 사람도 4명, ‘짜파게티’를 가장 좋은 라면으로 꼽는 이웃도 1명이 있다. 누굴까?

‘김치 없이 사는 한국사람’은 없을 듯하지만, 이 마을 사람 중 무려 27명이 밥 먹을 때 김치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김장철인데, 이 마을 여성 중 80명은 김치를 담가본 적이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남성 중 42명도 김치를 담가본 적이 있다는 사실에 이 마을 남성들은 ‘도대체 누가…’라며 수긍하지 않을지 모른다.

1억원이 넘는 고액과외로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15명에 대해, 그럴 능력이나 마음이 없는 대부분 이웃 83명은 15명을 ‘대물림’이란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의 생각도 엇갈렸다. 37명은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했지만, 52명은 두산베어스의 승리를 기원했다. 마을 사람 중 53명은 ‘촌장’이 마을을 잘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33명은 ‘그렇지 않다’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방문객에게 이 마을은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다. 라면을 먹는 사람도 있지만 안 먹는 사람도 적잖이 눈에 띈다. 좋아하는 야구팀도 다르고, 촌장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혼란스러울 정도로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마을의 미래를 위해선 ‘다름’을 낯설거나 적대시하면 안 된다. 자신의 울타리를 한 뼘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완고하거나 극단들이 득세하면 이 마을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광기(狂氣)가 지배했던 다른 마을들의 비참한 말로를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다. 마을이란 게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남들과 다르다는 차이를 견디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려 애쓰는 곳이다.

100명이 사는 이 마을, 어차피 99명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신라면을 좋아하는 다수가, 짜파게티가 가장 좋다는 소수의 목을 조르면 안 된다. 김치를 담그지 않은 남성들은 김치를 담가본 경험이 있는 ‘옆집 남자’ 를 무시하는 건 옳지 않다. 고요한 마을엔 소음도 없지만, 역동(力動)도 함께 사라진다.

공존과 조화가 이 마을의 중요한 덕목이 돼야 한다는 성숙된 마을주민 의식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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