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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홍길용> 국민이 그것을 바란다고?
꼭 918년 전 이맘때인 1095년 11월 18일 프랑스 중서부 클레르몽.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며 예루살렘 공격을 명령한다. 174년에 걸친 십자군전쟁의 시작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전쟁이자, 원정(遠征)은 이렇게 시작됐다. 클레르몽공의회 이후 905년이 지난 2000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십자군 전쟁을 포함해 과거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잘못을 최초로 공식 인정했다. 절대권위를 상징하는 교황의 잘못을 인정한 용기를 가졌던 요한 바오로 2세는 선종 후 불과 6년 만에 시복(諡福)될 정도로 추앙을 받는다.

요즘 정치권 최대 화두는 종북과 대선부정이다. 여권은 야권이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과 손을 잡았으니 종북이라고, 야권은 여당이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도움으로 대선에서 이겼으니 부정한 정권이라며 공세다. 종북이나 대선부정 모두 위법임은 분명하다. 실체를 규명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특히 아직 법원 판결도 나지 않은 사안을 두고 마치 결론이 난 양 재단하며 온갖 과장을 붙인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사상문제, 여권의 도덕성을 문제삼아 표를 얻으려는 속셈인 게 너무 빤히 보인다. 어떻게 이 나라는 좌우에서, 남북으로, 그리고 다시 여야로 찢겨 해방 이후 75년째 서로 ‘나쁜 놈’ 만드는 데만 열심일까? 심지어 중국이 우리 땅인 이어도를 자기네 하늘 아래 있다고 우겨도 정치권은 온통 ‘종북놀이’, ‘불복타령’이다.

차라리 정쟁만하면 그나마 낫다. 민생을 들먹이며 마치 국민들 걱정하는 척 기만하는 모습에는 정말 속이 뒤집힐 지경이다. 여야 모두 서로 자신들 법안, 예산안이 반영되지 않으면 나라가 거덜 날 것처럼 호들갑이다. 그런데 어차피 정쟁 협상 결과에 따라 민생관련 법안이나, 예산안은 며칠 새 벼락치기로 후다닥 처리할 게 아닌가. 적잖은 의원들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당 지도부의 결정이라며 찬성이며 반대표를 영혼없이 던질지 모른다.

당장 올겨울 경영난에 봉착한 기업들에서 수만여명의 해고를 계획하고 있다. 또 국회의원들이 뭔지도 모르고 통과시킬 법안들 때문에 또다시 수천 수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 일례로 이미 발의된 파생상품 등 금융거래 과세 강화가 시행되면 금융권의 자금조달 및 자산운용에 치명적이다. 이는 일반 기업들의 자금조달에도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두루뭉술하게 장밋빛으로 부풀려진 예산안은 세수부족과 이에 따른 재정적자로 이어져 나랏빚과 국민 세금부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미 가계빚이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선 상황에서, 국가 빚도 내년 1000조원 돌파가 확실시 된다. 만약에나 금융시장 불안으로 금리라도 오르게 되면 온 나라가 빚더미에 깔려 압사(壓死) 당할지도 모를 지경이다.

헌법은 제46조 2항에서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정하고 있다. 국가이익보다는 공천 여부에, 당론에 따라 직무를 행하지나 않는지 의심할 때다. “당이 바란다”, “내가 바란다”는 속내를 더 이상 “국민이 바란다”는 말로 기만하지 말자. 제발. 

홍길용 (정치부 차장)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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