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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데이터> 현대건설 해외수주 1000억弗 첫 돌파…‘건설한류’ 새역사 쓰다
해외진출 48년만에 ‘전인미답’ 대기록 달성…신재생 등 미래성장형 동력 앞세워 새로운 글로벌 도약 준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내딛는 건 고난이며 역사다. 선례가 없기에 그 종착역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고인이 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해봤냐”는 한마디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어려움을 견뎌냈다. 그리고 피와 땀으로 ‘건설한류’의 새 역사를 썼다.

현대건설은 최근 14억달러 규모의 중남미 지역 초대형 정유공장 공사를 수주하며 해외 수주 누계가 1010억527만달러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건설업계 최초의 해외수주 누계 1000억달러 돌파다. 국내 건설업계 해외수주 전체 누계(5970억달러)의 17%가량을 차지하는 규모다.

1965년 국내 건설사 최초로 태국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540만달러 규모) 공사를 수주해 해외 건설현장에 발을 들여 놓은 후 48년 만의 쾌거다. 현대건설은 태국을 시작으로 베트남, 괌, 호주, 알래스카 등에 차례로 진출했고, 70∼80년대엔 중동과 동남아로 건설 영토를 넓혔다.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열사의 나라’ 중동과 정글의 숲 중남미 등 지구촌 전체가 현대건설의 일터로 변한 것이다. 그 결과 올해 세계 55개국에 진출, 776건의 해외 공사를 수행해 국가대표 글로벌 건설사 입지를 굳혔다. 


현대건설의 해외 진출 역사는 사실상 대한민국 경제성장사(史)다. 이 회사는 1960년대 후반 동남아 지역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며 외화벌이의 전사로 나섰다. 1974년엔 국제수지 적자 17억1390만달러로 1차 오일쇼크를 겪을 때도 대규모 해외 공사를 연이어 따내며 한국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실제 현대건설은 1975년 바레인에서 1억4000만달러 규모의 조선소 공사를 수주, 중동 건설의 첫발을 내디뎠다. 1976년에는 국내 정부 예산의 25%에 해당하는 9억3000만달러짜리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내며 국가 경제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

부침도 있었다.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던 현대건설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면서 2000년대 들어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2000년엔 ‘왕자의 난’으로 잘 알려진 현대가(家) 경영권 분쟁으로 대외 신인도까지 떨어져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다.

결국 2000년 11월 1차 부도, 이듬해 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며 채권단 관리를 받는 위기상황까지 갔다. 2006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현대건설은 그해 UAE에서 제벨알리 컨테이너터미널 공사를 따내 해외 수주 누적액 500억달러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1000억달러’ 기록은 그로부터 7년 만이다.

현대건설은 전인미답의 역사 ‘제2막’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건설은 원전, 신재생, 오일 샌드(Oil Sand) 등 미래형 성장동력을 앞세워 새로운 글로벌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외 건설업계의 시선이 대한민국 건설 대표기업 현대건설에 쏠리는 이유다. 

윤현종 기자/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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