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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정치에서 품격은 개발의 편자?
정치인의 품위와 격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싸우더라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달라는 지청구를 들을 만큼 들었을 터인데 도무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치에서 품위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고, 개발의 편자란 말인가. 국민을 얕잡아보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과 청와대 경호지원요원과의 충돌은 우리 정치권의 품격과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두 말 할 것 없이 강 의원의 행동은 국회의원답지 못했다. 시정연설을 마친 대통령이 국회를 떠났는데도 본관 앞에 청와대 경호버스가 서 있는 게 못마땅했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국회사무처에 조치를 요구하든지, 경호실에 항의할 것이지 차에 발길질을 하고 애먼 버스운전 순경에게 막말을 할 일은 아니다. 더욱이 경호작전을 수행 중인 버스 순경 입장에서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더한 사람이라 해도 지휘계통의 지시 없이 차를 움직일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국회의원이 경호버스 기사와 드잡이를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격에 맞지 않는 처신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파장이다. 따지고 보면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면 그만인 사안이었다. 그런데 이게 순식간에 ‘정치적 사건’으로 커져버린 것이다. 민주당은 마치 청와대 경호원이 야당 국회의원에 모진 박해라도 한 것처럼 요란을 떨고 있다. 누가봐도 오버다. 새누리당도 여당다운 너그러움이 절대 부족했다. 본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까지 할 사안인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강 의원을 고소한 청와대의 대응은 또 뭔가. 우리 정치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더 할 말이 없다.

강 의원 건만이 아니다. 국회사무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회의장에 입장하는 대통령에게 접근하려다 제지당한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의 돌출 행동은 옆에서 보기에 딱할 정도였다. 국회 단상에서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는 야당 의원을 향해 “종북말고 월북하라”며 목청을 높인 것도 품격과 거리가 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파격적인 화법으로 숱한 화제를 낳았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석 달도 되지 않아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을 던져 온 나라를 발칵 뒤집더니 얼마 뒤에는 젊은 검사들과 대화 도중 “막가자는 거지요”라며 즉석에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그 놈의 헌법이…” “언론에 찍혀서…” “군대에서 썩지말고…” 등 대통령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운 표현은 수두룩하다. 그의 화법은 임기 내내 ‘대통령 품격’ 논란을 야기했다. 인간적이고 탈권위적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대통령깜이 못 된다’는 노골적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을 보면 노무현 화법은 ‘양반’인 셈이다. 그때는 과격하고 거칠긴 해도 나름 철학과 방향성이 있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군 세계의 모범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숱한 개발도상국이 ‘한국을 벤치마킹하자’며 몰려오고 있다. 경제력도 세계 최상위권이다. 그런데도 아직 선진국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3류 수준을 벗지 못하는 정치권 행태가 큰 요인일 게다. 하긴 우리 국회를 견학 온 외국 정상이 여야 싸움질에 민망해 자리를 뜰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정재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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