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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매시장에 무자격 대리 입찰 판친다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대학 졸업 후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하던 최용식씨(가명ㆍ30세)는 최근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한 경매컨설팅에서 3개월 정도 일하다가 그만뒀다. 그의 주요 업무는 경매로 집을 싸게 구해 달라는 고객을 위해 법원에서 ‘입찰 대리’를 하는 것. 일정한 자격증이 필요하지만 최씨가 일을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최씨는 “입찰 대리를 함께 일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무자격이었지만 법원에서 제재를 받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법원 경매 시장에 ‘무자격 대리입찰’이 흔하지만 법원에서 이를 걸러내는 절차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리인은 입찰서류(기일입찰표)에 의뢰인과의 관계를 표시해야 하는데 ‘친인척’, ‘지인’ 등으로 써 놓으면 다른 첨부서류나 검증 절차없이 무자격 입찰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로 인해 법원 경매시장에 무자격 대리입찰이 급증해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이상급등하는 등 시장을 교란하고 있지만 사실상 제재할 방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법원 및 경매전문가 등에 따르면 경매 대리 입찰을 실제로 친인척이나 지인이 한다면 법적인 문제는 없다. 입찰자 개인의 사정에 따라 이들이 단순히 심부름을 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수수료를 목적으로 한 업무행위 차원의 경매 대리는 자격이 필요하다. 변호사, 법무사이거나 매수신청대리인 교육을 받고 정식으로 법원에 신고한 공인중개사만이 경매 대리 입찰을 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라고 해도 법원에 신고 되지 않으면 대리 입찰은 불법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장은 “영리행위를 위한 경매 대리인이 수수료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입찰할 수 있는 등 의뢰인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대리 입찰업무의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에 따르면 현실에서는 무자격 대리입찰을 걸러낼 방법이 없다. 법원에서는 대리인이 입찰할 때 의뢰인의 위임장과 인감증명만 첨부하면 대리인과 의뢰인의 관계를 증명하는 어떤 서류도 요구하지 않는다. 대리인은 단순히 입찰 서류에 있는 ‘본인과의 관계’에 ‘친인척’이나 ‘지인’, ‘직원' 등이라고 표시하면 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동부지방법원 경매 집행관은 “현재로서는 법원에서 의뢰인과 경매 대리인과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절차는 없다”며 “우리는 그저 보증금이 맞게 들어왔는지 대리인이라면 위임장과 인감이 첨부돼 있는지만 확인 한다”고 말했다.

수원지방법원 관계자는 “대리 입찰자의 절대 다수가 ‘지인’ 등 업무상 관계가 아닌 사람들이라고 표시하고 대리 입찰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실제로 어떤지 확인하진 않고 있다”고 전했다.

경매 컨설팅, 경매 대리업이 활기를 띠고 있지만 법원에는 이들을 거를 수단이 없다는 이야기다.

무자격 대리 입찰자가 많아지면서 경매로 싸게 집을 마련하려 했던 서민들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고가낙찰, 권리분석 오류 등에 따른 피해다. 이런 업체들은 일단 낙찰을 받아야 감정가의 1~2% 정도인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무리하게 응찰하는 경향이 크다.

최근 매매시장은 얼어붙기 시작했는데 경매시장엔 응찰자가 대거 몰리고 과열된 분위기를 보이는 건 이런 무자격 대리 입찰자들의 영향이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이달 20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82.4%로 주택시장 활황기 수준으로 높다.

수원지법에서 매수신청대리업무를 하고 있는 강상규 공인중개사는 “요즘 낙찰자와 2위 응찰자 간의 입찰가격 차이가 5000만원이상씩 크게 벌어지는 경우가 특히 많아 졌다”며 “이런 경우 무자격 대리 입찰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무자격 대리 업무를 하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지난 3월 강원지방경찰청은 법률경매정보 회사를 차리고 수원, 천안, 전주지역에서 불법 경매 대리업무를 하던 무자격 경매 브로커 16명이 검거했다. 이들은 총 480여건에 걸쳐서 싸게 부동산을 낙찰시켜 주겠다면서 낙찰가를 끌어올리거나 계약금을 받은 후 입찰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등의 수법으로 수억원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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