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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전면 재정비 시급한 국가기록물 관리
6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3ㆍ1운동 피살자 명부’의 발견 과정은 국가기록물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월 일본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이 이사를 하려고 지하창고를 정리하던 중 먼지투성이 상자 속에서 우연히 찾았다고 한다. 이 명부에는 3ㆍ1운동 때 순국한 105명의 이름ㆍ나이ㆍ주소와 피살장소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유관순 열사가 옥중에 구타로 사망했다’는 내용도 있다. 또 관동대학살 때 처형당한 조선인 명부와 상황을 기록한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도 함께 들어 있었다. 이처럼 일제의 만행을 생생히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물이 아무도 모른 채 대사관 지하창고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냥 버리고 갔다면 영원히 묻힌 기록이 될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찌 일제 때 기록물뿐이겠는가. 정부 수립 이후 기록물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가수반인 대통령 관련 기록물부터 상당 부분이 분실되는 등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최규하 대통령 취임사, 전두환 정권 당시의 국보위 회의록, 노태우 정권의 6ㆍ29선언문, 김영삼 정부의 쌀시장 개방 사과문, 외환위기 발생 원인과 대책 등이 그런 경우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기록물들이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기록물들도 전산화 이전 단계 자료들은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각 부처에서 보내온 문서를 비롯해 도면과 사진 등 수백만건이 보관돼 있다. 그러나 부처별로 나눠져 있을 뿐 세부 분류가 되지 않아 어떤 기록물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더욱이 일부 자료들은 문서 목록도 없어 있으나마나 한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는 과거부터 기록을 중시해온 민족이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실록으로 엮어 낸 나라는 지구상에서 우리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한국의 기록물 관리와 보존 수준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지금이라도 국가 기록물에 대한 대대적 정비에 나서야 한다. 일제의 침탈과 해방, 6ㆍ25전쟁 등 격동의 역사를 겪으면서 해외로 유출되거나 행방불명된 기록물의 소재를 파악해 한 데 모으는 작업이 먼저다. 공공기록물관리법이 시행되기 전인 2000년 이전 국가 문서들도 재정비하고 개인이 소장한 문서는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회수해야 한다. 5년, 10년, 그보다 더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권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지속성이 있다. 역사를 쓴다는 결연한 각오로 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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