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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속도조절 필요한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현실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하다. 지하경제의 동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들이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금영수증 발행이 줄어들고, 5만원짜리 고액권은 환수율이 뚝 떨어지고 있다. 세원이 드러나지 않는 음성적 거래가 확대되고 있다는 한 증거다.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되레 돈을 음지로 더 숨어들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가장 눈에 띄는 지표 변화는 올 상반기 모두 25억6000만건으로 집계된 현금영수증 발급 건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 줄었다. 현금영수증제도가 시행된 2005년 이후 발급 건수가 감소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만큼 현금 거래 자체가 줄었다는 것인데, 그렇게 단순히 볼 사안이 아니다. 시중에 풀린 통화량은 올 3/4분기까지 8조원, 지난 한 해만 해도 5조원 이상이 더 늘었다. 그런데도 현금영수증 발행이 감소한 것은 돈을 쓴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5만원권 환수율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까지 48%에 그쳐 첫 하락세를 보였다. 고액권이 잘 돌지 않고 안방 장롱이나 금고 깊숙이 꼭꼭 숨어버렸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여신금융협회 집계에 의하면 신용카드 사용액도 지난 9월의 경우 전년 대비 1.7% 감소했다고 한다. 이 역시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이 줄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지만 매우 이례적이다. 음성적인 현금거래가 상대적으로 늘었다는 징후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지하경제는 당연히 양성화해야 한다.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국가경제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누르는 힘이 강하면 반발력은 그만큼 더 세지게 마련이다. 세무조사 등으로 압박하면 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불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일련의 관련 지표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27조원의 세금을 더 걷어 복지공약 재원으로 활용해야 하는 정부로선 마음이 바쁠 것이다. 하지만 서두른다고 지하경제가 지상으로 올라오지는 않는다. 납세자 윤리의식을 높이는 등 장기적 안목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카드 소득공제 축소는 재검토하고, 현금영수증제도도 발급대상 확대 등 보완을 꾀해야 한다. 일반소비자도 영수증 없는 현금거래를 하면 값을 대폭 깎아준다는 거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나라 경제가 훨씬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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