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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조용진…내일은 이동훈…女心은 바쁘다
국립극장 교차공연 ‘춤, 춘향 ’ ‘지젤’서 이몽룡·알브레이트役 열연…때론 강렬한 몸짓으로 때론 부드러운 표정으로 여성관객 사로잡아
무대 위에서 ‘꽃미남’이 피어난다. 때론 강렬한 동작으로, 때론 부드러운 손짓과 섬세한 표정으로, 제 역할에 빙의된 듯 무대와 물아일체를 이룬다. 이들이 객석과 시선을 교환하는 순간, 누나 팬과 이모 팬은 심장이 얼어붙는다. 아이돌 스타 얘기가 아니다. 요즘 무용 공연계에서 여심(女心)을 잡는 남자 무용수들 얘기다. 일본 아줌마 팬들도 거느린 ‘발레돌(발레리노와 아이돌을 합성한 신조어)’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무용에서도 여성 관객을 책임지는 대표선수가 등장했다.

국립극장이 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는 교차공연,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과 국립발레단의 ‘지젤’에서 그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이몽룡 역 조용진(28)과 알브레이트 역 이동훈(27)이 ‘그녀들의 남자들’이다. 최근 예술의전당 연습동에서 만난 둘 사이에 처음에는 어색한 듯 침묵이 흐르더니, 무용계 선배인 이동훈이 조용진을 “형”이라고 부르고, 남자 무용수로서의 고충을 얘기할 때 고개를 끄덕이는 등 차츰 허물이 사라졌다. 나이가 겨우 한 살 차이인데도 이동훈은 귀여운 막내티가 흘렀고, 조용진은 차분하고 침착한 게 모범생 느낌이었다.

“저희는 21살이 막내예요. 슬픈 일인데 지난해부터 윗선배들이 죽죽 빠져나가서, 제가 갑자기 중참이 돼버렸네요.” 나이 얘기가 나오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훈은 짐짓 어깨가 무거운 체한다. 외려 나이 많은 조용진이 국립무용단에선 막내 축이다. 발레와 전통무용의 차이다. 발레리나를 번쩍 들어올리고 고난이도 점프는 물론 인체의 아름다운 비율을 보여줘야 하는 발레리노는 20대가 전성기이지만, 우아한 몸짓과 풍부한 표정을 살려야 하는 전통무용에선 30대가 주요 배역을 꿰찬다.

입단 3년차 조용진을 주역에 발탁한 것은 국립무용단이 젊은 관객을 객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내놓은 ‘히든카드’다. 조용진은 “앞선 선배들이 쌓아놓은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며 바짝 군기 든 각오를 다졌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훈(오른쪽)은 팬카페도 개설돼 있고 상당한 팬을 거느린 발레 스타다. 국립무용단 조용진은 최근 30~40대 여성 팬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사고 있는 라이징 스타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둘은 상반된 이미지이지만, 무대에선 똑같이 지체 높은 신분이다. ‘지젤’의 알브레이트는 시골 처녀 지젤을 농락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나쁜 귀족. “그 시대에는 귀족이 마을에 내려와 놀다 가고 그랬대요. 마냥 나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에요.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나중에 용서받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연기하려 했어요.” 이동훈은 알브레이트를 옹호했다.

춘향을 고향에 두고 떠났다가 훗날 이부종사(二夫從事)를 강요하며 옥중 춘향을 놀리는 몽룡도 마냥 착한 남자만은 아니다. 조용진은 “목표를 향해 가는 남자지만, 일편단심이다. 쉽게 말하면 로맨티스트다”고 정리했다. 그는 “무용극에선 춤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 연기 연습을 많이 한다”며 “춘향이 내 여자친구라고 상상하니까 자연스럽게 감정 몰입이 됐다”고 했다.

조용진은 이동훈의 연기를 익히 봐 왔다. 그는 “이동훈을 동아콩쿠르 때 봤는데, 테크닉이 좋고 ‘해적’ 역할인데도 귀족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칭찬했다. 또 그 역시 발레리노가 될 뻔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처음에 발레를 시키려고 했었는데, 발레복이 민망해 꺼려졌다는 것.

이동훈도 처음에는 발레가 천직이 될 줄 몰랐다. 그가 비보이 출신 발레리노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는 “어머니가 콩쿠르 우승을 보고 우시는 거 때문에 발레를 시작했다. 한국 무용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당시 체육 선생님이 한국무용을 전공했었다”고 떠올렸다. 이동훈은 “부모님이 공연을 거의 매번 보러 오시는데, 부모님이 좋아하실 때 무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무용 대중화에 대한 고민은 발레리노에나 한국무용수에나 똑같이 무거운 짐이다. 조용진은 “한국무용을 한다고 하면 부채춤이나 살풀이 같은 거만 생각한다.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젊은 세대들의 생각을 바꿀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고 털어놨다. 이동훈 역시 “30대 후반에 은퇴하면, 발레 대중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며 자못 진지해졌다.

왕자, 귀족, 해적 등 무대에서 멋있는 역할은 죄다 거쳐본 이들이 욕심내는 배역은 무엇일까.

이동훈은 “이제까지 무대에서 나쁜 남자 역할을 많이 해봤는데, 제 안에 또 다른 캐릭터를 끄집어내는 과정이 무용수로선 신선하고 새로운 활력이 된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을 매우 좋아하는데, 로미오는 철없는 아이 같은 모습과 절규하는 장면에선 남자다운 모습 등 여러 개성이 있어서 좋다”고 로미오를 첫손에 꼽았다.

조용진은 “멋있는 것보다 재밌는 역할이 더 좋다. 춤으로 여러 가지를 표현할 수 있는 광대 역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춤, 춘향’은 17일과 19일, 23일에, ‘지젤’은 18일과 20일, 22일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두 작품을 모두 관람하면 할인 혜택도 준다. (02)2280~4114~6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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