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패자만 남은 전쟁’, 잦은 파업+불황에 신음하는 푸조 시트로엥 공장 가보니
[파리=김상수 기자]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푸조 시트로엥 포아시(poissy) 공장. 지하철 역에서 내리마자마자 공장 벽면에 새겨진 푸조 시트로엥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 뿐이었다. 이곳이 푸조 시트로엥 공장임을 알 수 있는 건 그 글씨가 유일했다. 공장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차량이 가득해야 할 주차장엔 차량 몇 대만이 외로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닫은 상점은 도시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했다. 한 때 세계 4위의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호령했던 프랑스. 격세지감을 실감케 하는 오늘날 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현 주소이다.

강성 노조의 경직된 노사문화는 고비용 저생산의 비효율을 극대화했고, 결국 프랑스 자동차산업의 후퇴로 이어졌다. 그 결과 푸조 시트로엥은 대규모 감원 및 공장 폐쇄 조치까지 강행하게 됐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파리 시내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푸조 시트로엥 포아시 공장은 굳게 철문이 닫힌 채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보 없는 노사갈등, 서로의 이익만 앞세우다 마침내 ‘패자만 남은 전쟁’으로 끝났다. ‘기회비용’이라 하기엔 너무나 많은 걸 잃었다. 이역만리 타국의 일이라 치부하기엔 어딘가 한국 자동차산업의 현주소와도 닮아 있다. ‘반면교사’란 말이 이보다 더 절실한 때가 있을까.

푸조 시트로엥 포아시 공장은 마치 멈춰 있는 공장처럼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었다. 여느 자동차 공장과 너무나 다른 풍경이었다. 차량이 오가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공장 내부에서도 한 두명의 경비원만 오갈 뿐이었다. 주말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생소했다. 생산된 차량으로 가득해야 할 주차장엔 빈 차량 보관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공장 앞을 지나가던 한 주민은 “주말엔 공장이 아예 돌아가지 않고 평일에도 예년같지 않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파리 북부에 위치한 올네 수부아 공장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이곳은 이미 내년에 폐쇄하기로 결정된 곳. 폐쇄가 결정되기까지 극심한 파업에 시달렸고, 도시 전체가 마치 ‘전쟁터’처럼 변했다. 경직된 노사문화에 따른 경쟁력 약화가 결국 공장 폐쇄로 이어진 셈이다. 코트라 파리무역관 관계자는 “올네 수부아 공장의 경우 폐쇄가 결정된 뒤 치안 상태가 좋지 않다"면서 “대외 방문을 자제하는 정도”라고 전했다. 

파리 시내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푸조 시트로엥 포아시 공장이 주말동안 공장 가동을 멈추고 있다. 철문 사이로 빈 공장 내부가 눈에 띈다.

포아시는 유명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물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 하지만 이 도시의 생계를 담당하다시피 했던 푸조 시트로엥 공장이 흔들리면서 도시도 빛을 잃은 듯했다. 공장 인근엔 수많은 상점이 있었지만 정작 문을 연 곳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공장 인근에서 플라토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은 “자동차 경기가 좋을 땐 이곳 상권도 항상 사람으로 북적거렸다”며 “요즘엔 상점들 모두 불경기가 심각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푸조 시트로엥은 오네 수부아 공장 폐쇄를 비롯, 프랑스 내 공장의 대규모 구조조정 및 생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유럽 경기 침체에 따른 판매 감소가 영향을 끼쳤지만, 이는 푸조 시트로엥 만의 악재는 아니다. 본질적으론 프랑스 자동차산업의 경직된 노사문화에 따른 낮은 생산성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분석이다. 세계 4위권의 자동차 생산국이었지만, 지난해엔 태국에까지 밀리며 10위권 밖으로 떨어졌다. 
 
푸조 시트로엥 포아시 공장 인근에는 수많은 상점이 있지만 문을 연 곳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코트라에 따르면, 푸조 시트로엥의 올해 1~5월 글로벌 생산량은 137만1523대로, 전년 동기 대비 13.9%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 세계 자동차업계가 경쟁적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사이 푸조 시트로엥은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프랑스 국내 생산량 감소가 결정적이었다. 이 기간 푸조 시트로엥의 프랑스 국내 생산은 23만337대로, 전년 동기 대비 35.7%나 감소했다. 잦은 파업과 판매 불황에 따른 결과이다.

코트라 관계자는 “프랑스 자동차 생산량이 2018년 이후에는 스페인, 영국 등에도 밀려 유럽에서도 2위에서 4위로 떨어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자동차업체는 물론 자동차 부품산업, 유통업계 등까지 다각적으로 피해가 예상된다.

포아시 공장을 떠나며 불연듯 한국 자동차산업의 메카, 울산이 떠올랐다. 현대차가 자리한 곳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포아시. 장기 파업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울산은 과연 어떤 미래를 앞두고 있을까. 악순환의 고리로 가는가, 선순환의 상생으로 가는가.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도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dlcw@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