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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민이 던진 건 야구공이 아니라 꿈이었다…美 독립리그 첫 선발 3이닝 5실점
1963년 8월28일, 미국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앞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25만명의 군중에게 외쳤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닌, 그들의 인격으로 판단되는 나라에 살 것이라는.”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명연설이다.

그로부터 꼭 50년 후인 지난 8월28일, 세상과 역사를 움직인 킹 목사의 연설과 견줄 수는 없지만 한국의 30대 기업인이 미국의 독립리그 구단과 계약을 발표하면서 또 한 번 ‘꿈’을 이야기했다. “우리 고양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확신을 줄 기회를 얻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 말이죠.”

국내 첫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허민(37) 구단주가 아름다운 도전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허민 구단주는 2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록랜드 카운티 프로비던트 뱅크 파크에서 열린 2013 캔암리그 뉴어크 베어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3이닝을 던져 홈런 1개 포함해 안타 5개, 볼넷 4개, 사구 2개 등을 내주며 5실점했다. 1회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준 허민은 안타와 도루, 몸에 맞는 공, 2루타를 잇따라 허용하며 3실점했다. 3회에는 투런 홈런도 허용했다. 하지만 2회엔 특유의 너클볼로 상대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으며 삼자범퇴로 마무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경기를 생중계한 SBS ESPN의 안경현 해설위원은 “선수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직구 구속이 느린 건 어쩔 수 없다. 상대 타자들이 직구를 노려쳐서 안타를 맞았다. 하지만 첫 경기 치고 안정적으로 잘 던졌다. 너클볼도 좋다”며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부럽기까지 하다. 고양 원더스 선수들이 구단주가 당당히 공을 던지는 모습에 많은 것을 느끼고 자극받았을 것같다”며 허 구단주의 도전의식에 경의를 표했다.

국내 네티즌들도 경기를 지켜보며 “싱글A 타자들을 상대로 아웃카운트 9개를 뺏다니 대단하다” “구속이 아쉽긴 하지만 멋진 도전이었다”며 놀라워 했다.

허 구단주는 지난 28일 미국의 독립리그인 캔암리그의 록랜드 볼더스에 정식 선수로 입단했다. 1936년 창설된 캔암리그는 뉴욕 인근의 3개 팀과 캐나다 동부 2개 팀 등 5개 팀이 연간 100경기를 치르며 마이너리그의 싱글A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록랜드 볼더스는 지난해 16만1375명(경기당 3293명) 관중을 동원한 캔암리그를 대표하는 구단이다.

젊은 벤처갑부 허민 구단주의 독특한 이력은 잘 알려져 있다.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의 허 구단주는 2001년 게임회사 네오플을 설립, 수차례의 실패 끝에 30억원의 빚을 떠안았지만 2005년 출시한 ‘던전앤파이터’로 큰 성공을 거둔다. 2008년 네오플을 3800억원에 넥슨에 매각한 뒤 2010년 소셜커머스업체인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 투자와 경영을 맡으며 사업가로서 행보를 이어갔다. 서울 대치동에 있는 미래에셋타워를 880억원에 인수한 허민 구단주의 재산은 9억 달러(약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야구팬들에겐 성공한 기업가보다 ‘야구광’ ‘괴짜 구단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네오플을 매각한 뒤 돌연 음악을 공부하겠다며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난 그는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설적인 너클볼 투수 필 니크로에게 너클볼을 배웠다.

2011년엔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를 창단, 또한번 팬들을 놀라게 했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고양 원더스는 프로의 벽 앞에서 좌절한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프로팀 입단의 꿈을 심어주는 ‘야구 사관학교’의 역할을 했다. 허 구단주는 2년 간 김성근 감독을 수시로 찾아가 투구자세와 견제, 수비 등 투수 훈련을 받았다. 이날 선발등판 때도 날카롭고 안정적인 견제로 1루 주자의 발을 묶어놓았다.

올 초부터 애리조나와 텍사스, 시애틀 등의 루키 팀 입단 테스트를 받은 허 구단주는 너클볼 구위가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선수 출신이 아니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입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7월 2주간의 트라이아웃을 거쳐 정식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는 꿈을 이뤘다.

켄 레너 록랜드 구단주는 “2012년 뉴욕 닉스에 ‘린 새니티’(Lin Sanity)가 있었다면 2013년엔 ‘민 새니티’(Min Sanity)가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린 새니티’는 NBA 뉴욕 닉스의 하버드대 출신 가드 제레미 린의 돌풍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허민 구단주의 이름을 인용해 ‘민 새니티’로 재조합한 것이다. 록랜드는 허 구단주에게 내년 스프링캠프에도 정식 초청했다. 야구공에 꿈을 실어 던진 허민 구단주의 아름다운 도전은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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