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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덕준의 메이저리그 관람석>야구 중계 65년, 80대 빈 스컬리를 만나는 기쁨
“다저스 야구 시간입니다(It‘s time for Dodger Baseball!)”

이 짤막한 한마디는 LA다저스 야구를 중계방송하는 라디오나 텔리비전을 틀면 시그널음악이 잦아들면서 울려퍼지는 오프닝멘트입니다. 억양과 톤이 언제나 한결 같습니다. LA 시민들은 이 한마디가 들리면 안도합니다. 산타모니카 해안쪽 하늘을 물들이는 저녁노을과 다저스 경기 중계방송의 오프닝멘트는 LA의 일상이 평화롭게 마무리되고 있다는 상징성을 갖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저스의 목소리(Voice of Dodgers)‘ 빈센트 에드워드 스컬리, 즉 빈 스컬리씨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스컬리씨가 내년 시즌에도 다저스 중계를 맡기로 했지요. 그가 다음 시즌에 중계부스를 맡을 지 여부는 해마다 이맘때 결정해 발표하곤 합니다. 1927년생인 노령을 감안, 다저스구단은 몇년전부터 다년계약을 하는 대신 스컬리씨 스스로 판단하여 한해, 한해 일을 더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정하도록 하고 있지요. 1950년부터 다저스 중계를 시작해 내년이면 65년째가 되니 현역을 유지하느냐, 은퇴하느냐는 단연코 뉴스의 초점이 됩니다.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1년 더 들을 수 있다는 데 무엇보다 안도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공인(公人)을 대상으로 그가 하는 일을 제발 그만 두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고 보면 스컬리씨의 존재가 다저스는 물론 미국의 야구문화에서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참 매끈합니다. 살짝 허스키가 섞여 구수하고 달콤합니다. 듣기능력이 처지는 외국인에게도 희한하게 잘 들리는 또박이 영어입니다. 그만큼 쉬운 단어를 많이 씁니다. 쓸데없이 야구의 전문용어를 구사하지 않습니다. 투심,포심, 체인지업 따위와 같은 구질을 구분하는 중계는 하지 않습니다.패스트볼(직구) 아니면 브레이킹볼(변화구), 딱 두가지만 사용합니다. 스컬리씨의 중계를 접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개인적으로 그를 신뢰하게 된 계기도 그가 복잡다단한 각종 변화구를 전문용어로 구사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타자나 포수조차 어떤 구종인지 분간하기 어려울진대 그 먼 중계석에서 어찌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구분하고, 포크볼과 커브를 가려내는 지 저는 가끔 그런 용어를 구사하는 야구캐스터와 해설가들의 강력한 시력을 경탄해 마지 않습니다)

스컬리씨가 무려 65년의 세월 동안 중계마이크를 잡고 있는 비결이 뭘까요. 그것은 수많은 다저스팬과 야구인,미디어로부터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굳건하게 지지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이나 다름없습니다.

다저스 경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주 접촉했던 경험에 비춰볼 때 그는 참으로 명랑쾌활합니다. 80대 노인답지 않게 씩씩한 발걸음으로 걸어다닐 때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오페라 아리아의 한소절씩을 부릅니다. 수다스러울 정도로 말을 많이 하는데 마무리는 늘 좌중을 배꼽쥐게 하는 에피소드이거나 유머입니다. TV중계 화면에 관중석의 어린아이들이 비춰지면 반색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붙여줄 수 있는 온갖 찬사와 은총의 형용사는 모조리 동원하지요. 뭐니뭐니해도 그는 경기 중에 발생한 논란거리에서 철저하게 중립과 균형을 지킵니다. 야구 외적인 세상사에 대한 촌평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서 들을 수 있는 얘기는 오로지 다저스와 야구에 관한 것 뿐입니다. 누군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음에 가끔 행복해질 때가 있습니다. 빈 스컬리씨는 그런 인물에 가깝습니다. 그의 모친이 97세까지 장수했다는 가계력에 또 안심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미주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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