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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00년전의 ‘날선 풍자’…
‘개구리’ ‘구름’ ‘새’ 아리스토파네스의 그리스 희극 3부작…대한민국 현실에 맞게 각색 잇따라 무대위에
“불행한 시대의 강에 떠다니는, 불행한 녹조들이 많아!”(신부)

“아! 졸라 어려운 화두다!”(동자)

“언제부터 돼지 새끼들이 잔칫집 주인이 됐는지 주객이 전도됐네! 제대로 된 사람이 필요해. 다들 말로만 살아있지. 그분을 만나게 해줘.”(신부)

26일 저녁 늦은 시간에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는 연극 ‘개구리’(9월 3~15일, 이하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연습이 한창이다. 주인공 신부와 동자가 ‘그분’을 만나기 위해 뱃사공에게 저승까지 실어달라고 간청하는 대목. 가시 돋친 설전이 쏟아지고 탭댄스와 뮤지컬 ‘영웅’의 패러디까지 연희가 펼쳐지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다른 배우들이 큰소리로 웃으며 분위기는 왁자지껄하다.

국립극단이 가을 공연을 희극으로 출발한다.

세상이 혼탁할수록 희극, 코미디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공연계에선 정설로 여겨진다. 최근엔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 희극을 모은 ‘14인(人) 체홉’이 오경택 연출로 공연됐고, 지난달 명동예술극장은 여름의 시작을 ‘휴먼코미디’로 알렸다. 지금 대학로에선 ‘코미디페스티벌’이 관객을 웃음 도가니로 빠뜨리고 있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운 관객들은 코미디 공연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랬다.

국립극단은 그리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개구리’(9월 3~15일) ‘구름’(9월 24일~10월 5일) ‘새’(10월 22일~11월 3일)를 시리즈로 올린다. 사진은 박근형 연출작 ‘개구리’.                                                                               [사진제공=국립극단]

국립극단은 그리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개구리’, ‘구름’(9월 24일~10월 5일) ‘새’(10월 22일~11월 3일)를 시리즈로 올린다. 2500년 전 희곡을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에 맞게 각색한 작품들이다. 지난 7월 신작 ‘그 사람의 눈물’과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빈부격차, 물질만능주의 등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은 박근형 연출이 ‘개구리’의 극본과 연출을 맡아 다시 한 번 날선 풍자에 나선다. 박 연출은 허무한 블랙코미디를 자주 올리는 이유를 묻자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이 다 어렵지 않냐?”고 되물었다.

‘개구리’는 원작의 뼈대만 가져올 뿐 내용은 대부분 한국색으로 염색됐다. 삼촌과 조카 사이인 신부와 동자승, 오이, 광대, 뱃사공 등 등장인물들은 사분오열된 어지러운 세상을 개탄한다. 신부와 동자승은 이 세상에 희망을 불어넣어 줄, ‘그분’을 찾아 삼보일배하며 저승길에 나선다. 이 여정에서 몽금포타령 등 옛가락, 춘향전의 한 대목, 전(前) 대통령들을 은유하는 ‘풍운’과 ‘그분’의 논쟁이 토막토막 비약적으로 이어진다.

춘향전은 결말은 바뀐다. 원작과 달리 몽룡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춘향을 구해내지 못하고 탐관오리도 처단하지 못한다. 결국 정의가 불의를 이기지 못한다고 본 박 연출의 현실관이 반영된 결과다. 박 연출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도중에 개구리들이 나오는데, ‘송장개구리’다. 비록 이승에 살지만 언젠가 저승으로 가야 하는 우리 모두가 개구리다”고 말했다.

메시지는 어둡지만 극 전체 분위기는 마지막까지 경쾌하다. 배우들이 직접 아코디언과 드럼을 연주하고, 창작곡 3곡을 부르는 등 음악극 형식이 가미돼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시리즈의 두 번째작 ‘구름’ 또한 라이브 연주를 곁들여 신명나는 무대로 꾸며진다. ‘소년이 그랬다’ ‘내 이름은 오동구’ 등 아동ㆍ청소년 연극 연출에 장점을 보여 온 남인우 연출이 극본까지 맡았다. ‘구름’은 철학, 가치가 빠진 교육 현실을 비꼰 작품이다. 줄거리는 아들의 낭비벽으로 빚에 쪼들린 아버지가 아들을 소크라테스 학교에 보내 궤변술을 배우게 했다가, 현란한 궤변술을 배운 아들이 패륜아로 전락한 내용이다. 부동산ㆍ주식 하락 등 경제 현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추문 등이 패러디된다.

세 번째작 ‘새’는 ‘하땅세’ ‘천하제일 남가이’ ‘파리대왕’ 등을 함께 작업하며 참신한 무대언어를 선보여 온 윤조병 작가와 윤시중 연출이 의기투합해 올린다.



▶아리스토파네스(기원전 445~385년)는 누구=그리스의 대표 희극작가. 아테네에서 중산층 교육을 받고 자라난 그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해 아테네의 민심이 흉흉한 때 정치, 사회 세태를 풍자하는 희극을 많이 썼다. 당대에 잘 알려진 정치가나 철학자를 풍자하고, 시문학과 음악을 비평하거나 시사문제에 진지한 촌평을 혼합한 사회 모순 고발작을 주로 썼다. 그의 작품은 재기발랄한 대사, 짓궂은 유머와 패러디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 44편의 희극을 창작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개구리’ ‘구름’ ‘새’ 등 11편만 남아있다.

기원전 405년에 초연된 ‘개구리’는 아테네의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비극의 신 디오니소스가 저승으로 가서 아테네 초기 민주정치의 챔피언인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와 전통적 예술에 혁신기풍을 도입한 에우리피데스 중 한 사람을 되돌려 오는 과정을 그린다. 그 안에 문예비평, 연극과 사회와의 상관관계를 다룬 점이 특색이다.

기원전 423년경에 쓰인 ‘구름’은 소피스트의 신교육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아리스토파네스가 31세인 기원전 414년에 쓴 ‘새’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아테네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 두 주인공 페이세타이로스와 에우엘피데스가 후투티 새로 변신해 하늘나라에 살고 있다는 테레우스 왕을 찾아가 새로운 땅을 추천받지만 마뜩지 않자, 하늘 땅 사이에 새들의 왕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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