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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879일 만에 1위’ 김기태는 어떻게 LG의 반란을 이끌었나
영화 ‘설국열차’의 메이슨 총리(틸타 스윈튼 분)는 반란을 위해 꿈틀대던 꼬리칸의 하층민들에게 일갈한다. “나는 앞칸, 너희는 뒷칸. 어딜 감히 넘봐!(I belong to the front. You belong to the tail. Keep your place!).”

하지만 ‘김기태 호’는 ‘자리(place)’를 지키지 않았다. 꼬리칸을 탈출해 진격하고 또 진격했다. 맨 앞의 머리칸을 점령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5879일. 프로야구 LG가 20일 넥센전서 승리하면서 59승39패(승률 0.602)를 기록, 삼성을 1게임 차로 따돌리고 단독선두로 나섰다. LG가 후반기 1위를 차지한 건 1997년 7월16일 이후 16년 만, 8월 1위는 1995년 이후 무려 18년 만이다. 페넌트레이스 열차의 엔진을 장악한 LG의 ‘신바람 반란'엔 ‘김기태 매직’이 있었다.

김기태 (44) LG 감독은 올시즌 개막 전부터 호기로웠다. “올해는 유광점퍼를 사셔도 좋습니다.” 지난 3월 미디어데이 때 김 감독이 한 이 말은 LG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장담한다는 얘기였다. 쌀쌀한 날에 입는 유광점퍼는 LG의 ‘가을야구’를 상징한다. 지난 10년간 장롱 속에서 유광점퍼를 꺼내지 못한 LG팬들은 김 감독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김기태 감독의 첫번째 철학은 ‘신뢰’다. 단 한 번도 선수 탓을 한 적이 없다. 지난 6월30일 잠실 SK전, 4-1로 앞선 8회 1사 1,2루서 마무리 봉중근이 밀어내기와 견제실책으로 순식간에 2점을 내줬지만 김 감독은 꿈쩍하지 않았다. 오로지 봉중근만 바라봤다. 4-3으로 승리한 뒤 봉중근은 김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시즌 LG 선수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김 감독은 특히 베테랑과 신예들에게 힘을 실었다. 이병규 정성훈 이진영 박용택 봉중근 등 고참들과 문선재 김용의 정의윤 등 젊은 선수들을 믿었다. 류제국 정현욱 손주인 등 이적 선수들도 자연히 이 분위기에 녹아들며 힘을 냈다.

위기는 기회로 만들었다. 3,4월 잘 나가던 LG는 5월 중순 두 차례 4연패하며 7위까지 주저앉았다. ‘역시나’ 하는 자조와 비아냥이 안팎에서 나왔다. 하지만 김 감독은 “승패 차이가 5경기까지는 나도 괜찮다”며 흔들리지 않았다. 같은 기간 임찬규의 ‘물벼락 세리머니’ 사건까지 터졌다. 김 감독은 임찬규와 함께 팬들에게 고개를 숙였고 팀이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LG는 10경기에서 8승을 거두며 다시 일어섰다. 역전승 1위(25승), 홈 승률 1위(0.617), 선취점 후 승률 2위(0.768) 등 각종 지표도 강팀의 ‘아우라’를 입증하고 있다. 김기태 감독은 “두려움이 사라진 게 가장 달라진 점이다”며 “모든 것이 선수들 덕분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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