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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안영철> 농산물 유통구조와 릴레이퀴즈
각 유통단계는 나름의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어 공짜로 유통마진을 챙기는 사람은 없다. 이 중 한두 단계를 없애면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만큼 중간단계를 배제한 유통경로가 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어 연상 릴레이퀴즈라는 게임이 있다. 맨 앞 사람이 단어를 보고 다음 사람에게 말 대신 손짓 발짓으로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면, 전달자는 다시 다음 사람에게 온몸을 이용해 단어를 설명한다. 사람마다 표현방식이 다르고 이해의 폭도 다르니 한두 사람만 거쳐도 엉뚱한 답이 나오게 마련이다. 때문에 참여한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즐거워진다.

이런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농산물유통구조도 이 퀴즈와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4~5단계에 달하는 중간상이 존재하는 것이나 전달자들이 많을수록 오답 확률이 높은 것처럼 유통단계가 많을수록 비용도 늘어나니 말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가격에서 차지하는 유통비용 비중이 41.8%라고 한다. 중간단계에서 누군가 폭리를 취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유통단계에서 하는 역할도 없으면서 마진만 얻는 게 가능할까. 농가에서 소비자까지 유통경로별로 비교한 한 일간지의 기사가 눈길을 끈다. 농가는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면 가격을 많이 받아서 좋다. 하지만 중간상이 하던 일을 농가에서 직접해야 하니 힘들어한다고 한다. 따라서 도매시장으로 보내는 게 편하다는 농가도 많다.

산지 수집상은 앉아서 이득만 취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부당하게 폭리를 취하는 것 같지만 기상이변이나 병충해의 위험을 감내하고, 자금을 융통해주며, 수확기 농작업도 맡는다.

또 중도매인(경매를 통해 소매상에 중개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눈썰미로 경매에 참여해 공정한 가격결정에 기여하고, 수많은 거래처에 원하는 물량을 제때 조달해 준다. 이런 가운데 일부 대형마트는 산지 수집상과 거래를 생략하고 농가로부터 직매입하는 새로운 조달방식으로 유통비용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

요약하자면 각 유통단계에서 작업 대행, 수송, 보관, 포장 등 나름의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어 공짜로 유통마진을 챙기는 사람은 없다. 이 중 한두단계를 없애면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만큼 어떤 유통경로가 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가 시도하고 있는 중간단계의 여러 역할을 통합하는 것은 유통비용을 줄일 수는 있지만, 대기업의 취급 비중이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가격을 대형 유통업체가 결정하는 결과를 초래해 소수 기업의 이윤만 늘려줄 소지가 있다.

때문에 농업인들은 산지에서 조직화ㆍ규모화를 이뤄 가격협상력을 가져야만 대형 유통업체와 협상에서 끌려다니지 않는다. 또 적정 수준의 판매장 확보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여야 불안정한 가격을 선도할 수 있다.

농산물을 규격 포장해 출하하고, 이를 소비자와 직접 연계하는 도매물류센터를 기반으로 한 유통계열화(생산업체가 도매점을 조직화하는 것)는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지금 농협중앙회는 안성농식품물류센터 개장을 앞두고 있다. 전국의 농산물을 모아 분배하는 기능 외에도 저장과 포장 등 상품화가 가능한 국내 최대 규모의 농산물복합유통시설이다. 농산물유통구조개선이 이슈가 되고 있는 이때, 이 센터의 개장으로 생산자는 더 받고 소비자는 덜 내는 유통구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안영철 농협중앙회 농산물도매분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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