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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윤재섭> 500년전 史草사건이 주는 교훈

정치권은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불필요한 정치공방을 멈추는 게 옳다.  참고인들은 수사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조사에 적극협력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알고, 배우는 후손들의 책임이다.


사관이 직무상 개별적으로 비밀히 작성한 국정기록을 가리키는 말인 ‘사초(史草)’가 문제가 돼 발생한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은 조선시대 연산군 4년(1498년) 때 발생한 무오사화이다. 무오사화는 세조를 폭군으로 비유한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그의 제자인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성종실록에 삽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성종 때 이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세를 불린 사림에 대한 훈구대신들의 정치보복이었다. 물론 재위기간이 12년으로 비교적 짧았지만 조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누리고 있던 연산군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사건이기도 했다. 왕권에 대한 신권의 도전을 억눌렀던 무자비한 임금이었던 연산군은 당시 사림의 급부상을 경계하고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연산군은 조의제문을 검토하는 동안 김일손이 세조가 과부가 된 자기 며느리 귀인 권 씨를 범하려 했다는 소문까지도 사초에 기록한 사실을 확인하자, 이미 죽은 김종직을 관에서 꺼내 부관참시하고, 김일손을 비롯한 김종직의 제자들을 모두 능지처참했다. 기록에는 무오사화로 화를 입은 사림이 44명에 이르고, 성종조에 부상했던 사림의 씨가 말랐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515년이 흐른 지금 정가는 물론 온 나라가 사초시비로 들끓고 있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둘러싼 책임공방이다. 국기(國基)를 흔드는 중대 사안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검찰이 지난 16일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자료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정치권의 소요는 여전하다. 새누리당은 노무현정부가 대화록을 폐기한 것이라는 주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때 누군가에 의해 정치적 목적으로 훼손됐을 가능성을 여전히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대화록을 폐기했다든가, 회의 기록물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는 과정에서 부주의로 분실됐다든가, 이명박정부 때 누군가 손을 대 사라졌다든가 일체의 주장 가운데 확인된 것은 없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와 봐야만 규명될 일이다.

정적을 해할 목적으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을 계속한다면 500여년 전 무오사화를 주동했던 훈구파 대신 이극돈이나 유자광과 다를 바 없다. 이들은 잠시 눈엣가시 같던 사림을 제거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지만 훗날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됐고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사초 실종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검찰 수사가 당초 예상했던 40여일을 넘어 두 달 가까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급 비밀 취급자에게나 공개 가능했던 국가기록물이기에 검찰로서도 정보접근이 어렵고, 암호화된 정보를 풀어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불필요한 정치공방을 멈추고 엄정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협조하는 게 옳다. 같은 맥락에서 수사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참고인 조사에 적극 협력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알고, 배우는 후손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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