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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함영훈> ‘선서(宣誓) 거부’가 불법 보다 더 나쁜 이유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세계사 책에 자주 등장하는 기원전 1300년 무렵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은 ‘투트 앙크 이멘’이 연철 표기된 것이다. ‘투탕카멘의 저주’라고 할 때, 바로 그 파라오이다. ‘투트’는 선대 파라오인 투트모세와 관련 있고, ‘앙크’는 생명, ‘이멘’은 태양신을 뜻한다.

여기서 ‘앙크(ankh)’는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수메르 사람들이 신성한 상징 앞에서 행하는 ‘생명의 말(言)’에서 비롯됐다. 앙크는 선서(宣誓)이다. 수메르인들의 이 의식은 맹세, 생명의 징표라는 뜻으로 이집트에 까지 전해져 최고 통치자가 ‘선정(善政)을 펴겠다’는 다짐으로 자기 이름에 넣을 정도로 신성한 것이었다. 숱한 문명을 개척했던 수메르인들은 순수함, 깨끗함, 밝음이 가득한 공동체를 추구했다.

히브리어로 선서를 뜻하는 ‘셰부아(shevu⁽ah)’라는 단어는 숫자 7(seven)을 뜻한다. 신약성서 첫 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7마리 새끼 암양을 증인으로 아비멜렉과 맺었던 신성 준수와 불가침 서약(vow)에서 유래됐다.

[사진 출처=123RF]

헬레니즘 문화권에서도 선서와 진실의 수호자인 ‘계약의 신’ 미트라(Mitra) 앞에서 나라 간 협정 등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고대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선서를 뜻하는 oath, vow 등의 단어는 준법, 헌신과 관련돼 있다. 오늘날 선서는 도덕적인 것도, 법으로 강제된 것도 있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되어도 그대만을 사랑하겠다”(혼인서약),

“스포츠맨십으로 정당당당하게 경기에 임하겠다”(올림픽 선수 선서),

“인종,종교,국적,정파,사회적 지위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다.”(히포크라테스의 선서)등은 도덕적인 것들이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선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최선을 다해 미국 헌법을 지킬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하느님이 보우하사(So help me God)”(2013년 1월2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법정 증인 선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진술이나 서면 답변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국회증언감정법상 증인 선서) 등은 법에 명시된 것들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은 ‘최소한 이건 꼭 지키라’는 뜻임을 중학생도 다 안다. 안타깝게도, 법은 세상의 모든 불법행위 유형을 모조리 명시할 수 없기에 자의적 해석과 법망 회피의 여지가 있고, 이 때문에 ‘유형적’ 조문에 개별 사건을 적용할 때 법률가의 양심에 호소한다. 결국 법은 이성과 양심, 상식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진 출처=123RF]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혐의를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경찰청장이 국회청문회에서 증인선서 조차 거부했다. 선서 거부권 행사가 합당 또는 부당했느냐의 논란은 차치하기로 한다. 선서 거부 행위의 불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양심과 상식에 비춰보면, 그 대단한 ‘배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찌보면, “거짓말 할 기회를 달라”는 것으로 읽힌다. 또, 안해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랑이 혼인 서약 절차때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에 비유할 만 하다.

법을 잘 아는 김기춘 전 검찰총장이 1989년 국정감사때 증인선서를 거부했다가 국민의 질타가 쏟아지자 뒤늦게 선서하던 모습과 쿠데타로 집권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해 연말 5공비리 청문회에 나와 손을 들지 않은 채 증인선서문을 읽은 행위 보다도 더 충격적인 사상 초유의 일이다.

[사진 출처=123RF]

정권 연장을 꿈꾸다 암이 도져 취임 선서를 연기한 바 있는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두달 뒤 죽었다. 원, 김 두 증인이 예외 조항을 들먹이며 변명할수록 양심은 더욱 피폐해 보인다.

선서는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며 건강한 대한민국호의 시동을 다시 거는 최소한의 점화플러그이다. 올바른 사회계약은 세상 모든 선서의 집합체이다. 선서를 하고 약속을 하자. 투탕카멘이 보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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