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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강우현> 문화융성 살아있나?
문예창달 돈으로만 되는게 아냐
자생력 갖게 해야 경쟁력도 향상
정부가 굳이 융합 나서지 말고
차라리 잠시 내버려 뒀으면…


지난 2월 25일, 국민행복시대를 내걸고 취임한 제18대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일순간 전율이 다가왔다. 어느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문화융성이란 말과 함께 자상한 설명이 반가웠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문화가 국력인 시대입니다.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입니다. 지금 한류 문화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기쁨과 행복을 주고 있고,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이 되고 있습니다. (중략) 새 정부에서는 우리 정신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 곳곳에 문화의 가치가 스며들게 하여 국민 모두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융성은 단어 해석으로 풀 수 없다. 문화융성을 통해 창조경제를 견인하자고 선언한 지 6개월, 근데 어디까지 왔나?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문화융성이 뭐지?”의 단계에서 그다지 나아간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보자.

취임사에는 ‘사회 곳곳에 문화의 가치가 스며들게 하여/ 문화의 가치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문화로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중요한 내용은 다 들어 있다. ‘문화와 첨단기술이 융합된 콘텐츠산업 육성을 통해 창조경제를 견인하고/ 세계가 하나 되는 문화를 통해 새 시대의 삶을 바꾸는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뜻인데, 답까지 나와 있다.

문화융성보다 해석에 어려움을 느끼는 말이 ‘융복합’인 것 같다. 얼마 전, “공무원에게는 융복합이 어려울걸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력 있는 엘리트들만 모여 있는 조직에서 넣고 빼고 뒤섞는 작업이 어렵다는 뜻이었다. 융합대학원이 있는 대학 교수에게도 물었다. “융합이 잘됩니까?” “허허~, 잘 안 돼요.” 훌륭한 전문가가 너무 많기 때문이란다. 유유상종, 비슷한 것끼리 섞어봐야 오십보백보다. 전혀 다른 것들을 섞어야 새것이 나온다. 하나는 주먹, 하나는 보자를 내야 융합이 된다. 하늘과 땅, ‘과’자가 융합의 고리이고 뼈대와 뼈대를 연결하는 물렁뼈가 문화다.

그러나 정부의 융복합 정책은 단순할수록 좋다. 잘 섞고 잘 비벼주기만 하면 된다. 예산을 배분할 일도 적다. 혀의 기능을 보라. 이빨의 강력한 파워를 요리조리 비켜가며 잘도 옮기고 섞어준다. 혀는 정부, 이빨은 의회이고 국민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화롭게, 그러나 충분히 씹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목구멍으로 넘겨주는 혀의 오묘한 능력으로부터 배우시라. 덜 씹은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다가 탈이 나듯, 얼마 전 “봉급쟁이는 봉이냐?”라고 비난받던 복지세금 해프닝은 덜 씹고 삼키려 한 사례다. 차라리 내버려두는 편이 낫다.

문화예산이 1조원을 넘었다고 문화부 청사에 현수막까지 내걸린 시절이 있었다. 예산이 늘었다는데도 다른 분야에 비해 푸대접받는다고 자조하던 예술문화 당사자들의 환영 소리가 크게 들리진 않았다. 왜? 돈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예산 타령 하는 이들이 많지만, 문예창달 문화융성이 돈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예술가는 자존심을 먹고 산다. 샐러리맨은 월급을 먹고 산다. 월급 값 하겠다고 벌이는 정책사업들을 되짚어봐야 한다.

크고 작은 축제행사에 자잘한 이벤트까지, 정부나 지자체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 같다. 예술문화인이나 영세 문화사업체의 몫까지 공기관이 해치우면 일자리만 줄어든다. 문예진흥기금이나 요상한 명칭의 지원사업으로 돈이 새지 않는지도 살펴야 한다. 어설픈 지원이 오히려 상습적인 문화거지를 만들 수 있다. 지나친 관심이 열정을 식힌다. 자생력을 갖게 해야 경쟁력도 좋아질 것이다. 굳이 나서서 융합시키려 하지 말고 차라리 잠시 내버려두라. 때로는 립 서비스란 비난을 듣더라도, 서로 모르는 전문가끼리 소개만 해줘도 된다. 융합은 융합으로 덕 볼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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