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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한일전은 늘 한일감정 축소판…경기장, 용광로보다 더 뜨겁다
스포츠 한일전의 심리학
“정각 2시 경기에 앞서 유엔(UN)기와 태극기, 일본기가 스탠드 정면에 휘날리는 가운데 붉은 유니폼의 가슴박에는 태극기를 달은 늠름한 우리 선수단을 선두로 청색 유니폼의 일본 선수들이 입장한 다음 애국가 봉창이 있었다. 이때 선수단은 물론 스탠드에 운집한 재일동포들은 감격의 눈시울만이 넘쳐흘렀으며 너도나도 힘차고 굳센 애국가로 장내를 흥분과 감회 속에 잠기게 하였던 것이다.”(1954년 3월 13일자 경향신문)

사상 첫 축구 한일전엔 눈물과 한(恨)이 있었다. 1954년 3월 도쿄에서 열린 스위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었다. 홈 앤드 어웨이로 치러져야 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인에게 절대로 한국 땅을 밟게 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두 경기가 모두 도쿄에서 열렸다. 이유형 감독은 “일본에 지면 선수단 모두 현해탄에 빠져 죽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고, 결국 한국은 적지에서 5-1 승, 2-2 무승부로 사상 첫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한과 울분은 없지만 한일전은 여전히 뜨겁다. 최근 한일전이 또 한 번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지난 7월 28일 잠실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의 욱일승천기와 붉은악마의 대형걸개가 관중석에 등장한 게 발단이 됐다. 욱일기는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 사용한 ‘대동아 깃발’로 일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이다. 붉은악마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걸개와 안중근 의사,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통천을 내걸었다. 일본 당국은 이에 대해 “민도(民度)”를 운운하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에 항의문을 공식 제출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근 한일전이 또 한 번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지난 7월 28일 잠실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붉은악마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걸개를 내걸었다.

한일전에는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친다. 축구와 야구, 농구, 배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단체종목뿐 아니라 개인종목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적수가 안 되지만 벤쿠버올림픽 전까지 한ㆍ일 피겨스케이팅 간판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맞대결은 늘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스포츠 한일전은 최고의 흥행카드이자 손대면 폭발할 것 같은 화약고였다.

윤영길 한체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한일전은 ‘무조건, 절대로 이겨야 한다’는 집단유전자, 즉 밈(meme)이 작동한다. 이것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며 “당연히 역사적 맥락에 가장 큰 뿌리가 있다. 여기에 1950~1960년대 선배들의 생각이 후배들에게 암묵적으로 전승되면서 팀 전체에 내재화된 가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일전의 비장한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는 추세다. 물론 한일전은 여전히 물러설 수 없는 승부이지만, ‘한일전 패배=대역죄인, 승리=영웅’이라는 부동의 공식은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 월드컵 축구,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종목에 상관없이 한일전 승리 빈도가 높아지고, 스포츠 경기력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도 일본을 앞서고 있다는 인식이 짙어지고 있다. 이런 점들이 자신감과 함께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갖게 하면서 한일전 승부에 대한 결연함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윤영길 교수는 “사회ㆍ문화적 관계 속에서 한일전에 대한 승부욕과 긴장감은 점차 약화되고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시점에서는 한일전을 대하는 집단유전자의 해체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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