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작은탱크’ 최경희 - 이총현 모자 “운동DNA, 어디 가겠어요?”
“리총현!” 어눌한 발음이지만 블라디보스토크 감독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한국인이 분명했다. 지난 5월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열린 러시아 아이스하키리그(Kontinental Hockey League·KHL) 신인드래프트에서다. 2라운드 28순위로 지명된 선수는 바로 한국 주니어대표팀 공격수 이총현(17·선덕고). 국내 아이스하키 선수가 해외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리그다. KHL은 2008년 러시아를 주축으로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가 참가해 출범했다. 관계자들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클럽이 국내 고교선수를 지명한 것과 같은 일”이라고 놀라워 했다. “아무래도 엄마에게 좋은 ‘운동 DNA’를 물려받은 것 같긴 해요.” 오는 17일 트레이닝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나는 이총현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웃었다. 1980년대 한국 여자농구 간판스타로 맹활약했던 ‘작은탱크’ 최경희(48) 씨다. 최 씨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다. 아들이 큰 무대에서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열일곱 아들의 설레는 첫 도전=“드래프트에서 제 이름이 불려지는 장면을 10번도 넘게 돌려봤어요. 볼 때마다 가슴벅차죠.” 182㎝, 76㎏의 단단한 체격의 이총현은 아직도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꿈만 같다. 그는 지난 4월 폴란드 티히에서 열린 2013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주니어 세계선수권 디비전1 A그룹 대회에 출전해 5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현장에서 그를 지켜본 바체슬라프 바이코프 2010 밴쿠버올림픽 러시아대표팀 감독은 신현대 주니어대표팀 감독에게 “저 선수를 유럽 트라이아웃에 한번 보내보라”고 귀띔했다. 당시엔 모두들 예의상 하는 말로 지나쳤지만 이총현은 이미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는 “지금 당장의 실력보다는 가능성을 보고 뽑아준 것같다. 생각하면서 플레이하는 모습, 위치선정 능력 등을 좋게 본 것같다”고 했다.

이총현은 1년 전 홀로 아이스하키 강국 핀란드로 떠나 핀란드리그 현지 선수들과 몸을 부딪히며 부쩍 성장했다. 노골적인 동양인 무시에도 굴하지 않고 새벽과 야간훈련을 자청하며 기어이 감독에게 인정받았고 출전시간을 조금씩 늘려 팀의 준우승에 일조했다. 최고의 농구스타였던 엄마의 영향도 있을까. “농구와 아이스하키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엄마가 돌파, 패싱, 슛이 다 좋았는데 그 운동신경을 좀 물려받은 것같아요. 멘탈적인 부분을 가끔 조언해주시는데 많은 도움이 돼요.” 


▶마흔여덟 엄마의 가슴벅찬 두번째 도전=성능좋은 엔진을 단 듯 수비수 사이를 빠르게 돌파하고 쏙쏙 골을 넣던 여자농구의 ‘작은탱크’는 20년 세월을 지나 열혈 ‘하키맘’이 되어 있었다. 둘째아들 이총현과 2살 위 형 총재(연세대), 3살 아래 동생 총민(경희중) 등 삼형제를 모두 아이스하키 선수로 키워냈다. 최경희 씨는 “열혈 엄마가 아니라 그냥 ‘열심’ 엄마다. 아이들이 하고 싶다고 하니까 열심히 쫓아다니며 도와준 것밖엔 없다”고 수줍게 웃었다.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 주역인 그는 1984년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에 입단해 농구대잔치 통산 최다득점(3939점), 최다 3점슛(5033개), 최다자유투(594개)의 빛나는 기록을 새기고 1993년 은퇴했다. 한 박자 빠른 슛타이밍과 돌파력으로 166cm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한 그는 삼성생명의 6차례 우승을 이끌고 3차례 MVP를 획득했다.

“운동 DNA요? 세 아들이 다 운동을 하니 엄마 피가 조금은 영향을 줬겠죠?(웃음) 총현이는 운동센스가 있고 시야가 넓은 게 저랑 좀 비슷해요. 가끔 플레이에 대해 조언해주면 잔소리로 안듣고 잘 받아들여줘 고맙죠. 가령 ‘너한테 수비수 두 명이 오면 동료 한명은 반드시 노마크로 비어있으니 그쪽으로 빨리 패스를 빼줘라’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제가 직접 운동을 하는 게 낫지, 아들이 하는 걸 보는 건 너무 힘드네요, 하하.”

 
최경희 이총현 모자 인터뷰.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꼭 20년 전 은퇴한 엄마는 아들 덕에 두번째 꿈을 꾸게 됐다. 아들은 엄마의 기대와 자신의 꿈을 양 날개삼아 세계무대로 날아오른다.

“사실 러시아 진출이 가장 마지막에 이루고 싶은 꿈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기회를 잡게돼 믿기지 않아요. 이젠 러시아에서 성공해 세계 최고리그인 NHL에 진출하는 게 새로운 꿈이 됐습니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