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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왜 힐링여행이 대세가 됐을까?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힐링 여행이 여행의 큰 흐름으로 떠올랐다. 걷기와 캠핑 열풍은 힐링 여행의 현주소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승용차를 타고 가면 불과 10~20분이면 지나갈 길을 천천히 사색하며 아날로그식으로 걷다 보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주말이면 자연 속에 텐트를 치고 1박2일을 보내는 캠핑족들도 많다. 전국의 지자체는 올레길, 둘레길, 산소길, 갈래길 등의 이름으로 호젓한 길을 조성해 놓았다.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핑장 또한 크게 늘었다. ‘아빠 어디가’ ‘1박2일’ 등 주말예능에서 텐트를 치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웃도어 시장 규모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오르게 된 이유를 알 만하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힐링 여행을 원할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상처를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소통이 잘 안 돼 이를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훨씬 많아졌다. 그래서 일반적인 유람성 여행보다는 자아를 성찰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 여행이 대세가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질서는 사람들을 과거보다 훨씬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피로사회’ ‘과로사회’라는 제목을 단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수많은 청년들이 취업시장에 진출도 못한 채 백수생활을 하고 있다. 100세까지 사는 고령화사회가 됐지만 직장인들은 수명의 절반밖에 살지 않은 상태에서명예(?)퇴직을 맞아야 한다. 가족관계에서도 소통이 쉽지 않다. 집이라는 공간은 평안하고 즐거운 공간이 아니다. 혼자 사는 가구가 늘고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공동체가 파괴되며 친구나 이웃과 소통하기 힘들어진 한 단면이다. 

생활시간을 연구한 윌리엄 갓비는 현대인들이 과거보다 상처를 많이 받는 것은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길거리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사람이 많아지고 운전대만 잡으면 ‘괴물’로 변하는 것은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대화를 통해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어서다. 시간부족은 인간관계 훼손과 단절의 큰 이유다. 상처가 많아진 사람들은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가정과 직장에서 쌓인 소통의 피로와 인간관계의 상처를 풀어야 한다. 그것은 휴대폰에 빠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것이 걷기 열풍과 캠핑ㆍ자전거 여행 열풍 등으로 나타났다.



걷기 힐링 열풍은 획일성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던 우리의 기존 여행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은 “아무리 명소를 구경한들, 함께 간 가족끼리 별 대화 없이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나갔다면 가족과 ‘함께한’ 내용은 없는 셈”이라면서 “한적한 비포장 도로를 걸어보면 차를 타고 빨리빨리 여행지로 향하던 방식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이 생긴다. 그것은 자신이 영위하고 있는 일상사에 대한 성찰일 수도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에너지, 자신감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산속이나 계곡 등 야외에서 캠핑을 하는 텐트족들도 문화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오랫동안 여행의 숙소로는 콘도미니엄과 펜션이 애용돼 왔다. 삭막한 도시의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장소만 콘도나 펜션으로 옮기고 외식만 할 뿐 주위사람들과 교류와 소통을 경험할 수 없다.

하지만 대자연 속에 텐트를 치면 자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도 쉬워진다.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끼리도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옆 텐트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어 ‘힐링’하기에 좋다.

최석호 레저경영연구소장은 영국과 프랑스도 우리보다 먼저 강이나 초원, 계곡을 따라서 걷는 열풍이 일어났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도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걷기모임인 ‘랑도네 클럽’을 만들었고, 경제침체를 경험한 영국도 지방마다 길을 조성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컨트리사이드법을 제정했다는 것.

인간관계에서 생긴 상처의 해결책은 자신의 내면에 있다. 그럴 때 조용히 여행을 떠나면서 삶의 맥락을 바꿔 보라. 그래서 뭔가 그리워지고 쓸쓸함을 맛본다는 자체가 인간관계의 통찰일 수 있고 관계 개선의 실마리일 수 있다. 그것이 ‘힐링’이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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