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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흔셋의 순정
데뷔 40년 ‘네개의 벽’ 무대에 오른 전위무용가 홍신자
자유는 속박없는 궁극적인 것…
아직도 가야할 나의 길

무대는 생명…쓰러질때까지 도전
박해진 후원 탓 다음공연 나도 몰라
심각하다? 나까지 신날 필요 없잖아



‘자유를 위한 변명’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등 여러 저서와 강연을 통해 전위무용가 홍신자(73)는 늘 ‘자유’를 외쳐왔다. 데뷔 40년을 기념해 지난 20~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네 개의 벽’도 자유란 주제의식이 겹친다. 1인 독무의 이 무대에서 홍신자는 네 개의 벽 안에 갇혀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며 방황하다 스스로를 깨고 나와 마지막엔 꽃비 속에서 소멸하는, 인간의 고독과 자유의지, 해탈을 표현하려 한 듯했다.

“자유는 궁극적인 거 아니에요? 속박받는 게 없어지는 상태의 해탈, 집착이나 두려움도 없고….” 공연 둘째 날인 지난 21일 만난 홍신자는 ‘자유’로부터 언제쯤 자유로워질 것이냐고 물은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전날 첫 공연의 피로감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쇠한 몸을 반쯤 의자에 파묻으면서 ‘공연이 어땠는지’ 기자에게 계속 되물었다. 홍신자는 “나의 지난 4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아직도 내 길을 가고 싶다’ 그런 의미”라고 말했다.

홍신자의 초기 발자취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타고난 ‘끼’만 믿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홀로 미국에 유학 간, 용감하고 당찬 여성. 현대예술의 중심부인 미국 뉴욕에서 서른이 넘은 나이인 1973년에 ‘제례’로 파격 데뷔한 그는 93년 영구 귀국하기까지 주로 해외 무대에서 전위무용가로 활동해왔다.

 
‘영원한 자유인’ 홍신자에게 춤은 꺼트리면 안 되는 ‘생명의 불꽃’ 같은 것이다. 데뷔 40주년작 ‘네 개의 벽’에서 그는 꽃과 의자를 소품으로 사용해 다양한 몸짓을 표현한다. 아름다움ㆍ젊음ㆍ여성성 등을 모두 놓지 않으려는 70대 무용가의 의욕이 엿보인다.                                                                                                                                             [사진제공=웃는돌무용단]

이번에 공연한 ‘네 개의 벽’은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1912~1992)가 1944년에 쓴 곡에 홍신자가 1985년에 안무한 작품이다. ‘존 케이지 페스티벌’(87년), ‘일본 도가 국제예술제’(98년), ‘홍콩 아트센터’(99년) 등 해외에서 여러 차례 공연했고, 지난해 10월 장충동2가 국립극장에서 열린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의 공식 초청작으로 초대된 홍신자의 대표작이다. 아울러 홍신자가 존 케이지의 ‘위험한 밤’에 영감을 얻어 안무한 신작 ‘아리아드네의 실’이 초연됐다.

‘네 개의 벽’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는데, 올해는 의자와 꽃다발 등의 오브제가 삽입됐다. 의상을 벗는 프롤로그와 꽃비 속에 파묻히는 에필로그가 추가됐다. 일본 음악가 마사미 다다가 피아노 연주를, 마사루 소가가 조명을 맡았다. 인도 오르손 비스토롬이 무대디자인을 꾸몄다.

‘아리아드네의 실’ ‘네 개의 벽’은 둘 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기괴하며 전위적인 인상을 남긴다. 넘쳐나는 B급 문화 등 가벼움의 시대를 사는 관객에게 더욱 묵직하고 심각하게 다가온다. “누구나 다 밝고 신 나는 것을 하는데, 나까지 그럴 필요 있어요?” 


하지만 ‘종심(從心)’을 실현하는 데에는 돈이 든다. 홍신자는 이번 공연으로 경제적 출혈이 심해 당분간 공연을 올리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후원이나 협찬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 인심이 박해진 것 같아. 나도 다음 공연을 언제 할지 모르겠어요.”

홍신자는 언제까지 무대에 직접 출연할 것이냐는 질문에 “무용가에게 무대는 생명이다. 할 수 있는 한, 여건이 될 때까지”라며 앞으로도 건재를 자신했다. “춤은 나를 스톱시키지 않고, 열정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불꽃 같은 거예요. 춤이 없다면 식물 같은 존재로 끝날 거예요. 그러면 인생이 너무 따분해지지 않을까? 쓰러지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해나가는 거죠.”

그의 다음 무대까지의 공백기는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아리아드네의 실 & 네 개의 벽’은 서울 공연을 마치고 26일과 27일 대구, 29일 창원에서 공연한다.(02)2272-2152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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