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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움과 경이..한중 현대작가들의 날선 작업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이 젊은 화가의 유일한 취미는 곤충도감과 식물도감을 샅샅이 뜯어보는 것이다. 광화문 교보문고 외서(外書) 코너에서 사온 도감류를 독파한 뒤 이를 그림에 옮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지구촌 육식식물 100’이란 사진집에 등장하는 100가지 육식식물을 대형 화폭에 치밀하게 그려넣는 것이다.

화가 허수영(29)의 근작 유화 ‘100 Caterpillars with Nepenthes’는 이렇게 탄생했다. 상상력으로 조합된 허구의 밀림에, 똬리를 틀고 자리잡은 생경한 육식식물 100종은 경이로움을 너머 공포의 기운까지 전달한다. 초스피드 시대인 요즘에도 이런 끈질긴 화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혀를 내두르게 하는 그림이다.


개념과 논리가 난무해 감동은 사라진 작금의 현대미술계에서 ‘감상의 즐거움’을 주는 독특한 작품을 모은 한중 현대미술전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에서 개막했다.


이번 특별전에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국과 중국의 20~40대 미술가가 초대됐다. 기획자는 윤재갑 상하이 하오아트미술관장.

그는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The moment, we awe)’이라는 타이틀로 그동안 눈여겨 봐왔거나 최근 발굴한 한국과 중국의 현대미술가 6명을 선별해 전시를 꾸몄다.


참여작가는 한국의 이석ㆍ이용백ㆍ허수영 3명, 중국의 니요우위ㆍ진양핑ㆍ치우안시옹 3명으로 아시아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거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이들이다. 여섯 작가는 모두 20여점의 회화와 비디오 및 설치 10여점, 조각 1점을 내놓았다.



본관에는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였던 이용백(47)의 작품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관을 통해 소개했던 조각 ‘피에타:자기죽음’과 회화 연작 ‘플라스틱 피쉬’, 그리고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미디어 작품 ‘브로큰 미러(broken mirror)’ 시리즈가 설치됐다. 검은 방에 설치된 ‘브로큰 미러’는 관람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이색작업이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갑자기 굉음과 함께 총알이 날아오며 거울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산산조각 금이 갔던 거울은 그러나 이내 온전한 거울로 되돌아오며 ‘실재의 시간’과 ‘가상의 시간’이 오버랩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TV나 영화에서 포착한 장면을 콜라주하듯 한 화면에 뒤섞은 진양핑(42)의 대형 회화, 세계 각국의 동전을 망치로 두들기고 사포로 긁은 뒤 그 납작한 표면에 중국 고전 속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린 니요우위(29)의 그림도 나왔다. 니요우위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생계가 막막해지자 ‘돈으로 돈을 벌자’며 흥미로운 동전작업을 시작했다.

신관 1층에는 손으로 일일이 그린 그림으로 애니메이션과 비디오를 제작한 치우안시옹(41)의 흑백톤의 묵직한 작업이 내걸렸다. 또 현실과 허구,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독특한 스펙트럼을 선사하는 재독작가 이석(37)의 회화도 볼 수 있다. 


허수영은 곤충도감과 식물도감 속 동식물을 그린 회화와 함께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서 그린 사계절 풍경화 ‘양산동’ 연작도 출품했다. 새싹이 돋고, 신록이 무성해지다가 낙엽으로 물들고, 눈발을 맞는 자연의 사계절을 한 화면에 끈질기게 담은 그림은 회화의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큐레이터 윤재갑 씨는 “요즘 현대미술은 감동이 없고,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작품을 보며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한 전시”라고 밝혔다.

7월 28일까지. (02)720-1524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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