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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세계 지성, ’세상은 왜 무가 아니라 유인가'에 답하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2004년 12월 반세기가 넘도록 무신론의 대표 주자였던 영국의 철학교수 앤서니 플루가 유신론으로 돌아선 건 일대 사건이었다. 이는 1980년대부터 진행돼온 사상계가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신으로의 귀환행렬에 정점을 찍는 일이었다. 그러나 2006년 신의 논쟁은 또 한 번 일대 전환을 맞는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필두로, 대니얼 데넷의 ‘주문을 깨다’, 루이스 월퍼트의 ‘믿음의 엔진’, 샘 해리스의 ‘종교의 종말’ 등 무신론이 득세하며 21세기 신의 논쟁은 여전히 ‘만들어진 신’의 자장에 머물러 있다. 과학이 이 세상의 존재 이유와 형성 과정을 설명해줄 것이라 믿는 쪽이 대세다.

짐 홀트의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21세기북스)는 존재론을 다루지만 신의 논쟁과 연결된다. 존재의 의미와 해석에 대한 종합 정리편 격이랄 수 있는 이 책에서 홀트는 고대 그리스철학부터 지금까지 과학과 철학, 신학과 우주학을 넘나들며 세계적인 지성들과의 대화를 통해 궁극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거기에는 아돌프 그륀바움, 리처드 스윈번, 데이비드 도이치, 스티븐 와인버그, 로저 펜로즈, 존 레슬리, 존 업다이크 등 우리 시대 최고 지성들이 포함됐다.

하이데거의 “왜 세상은 무가 아니라 유인가?”에서 유발된 홀트의 궁금증은 세 갈래로 진행된다. 세상을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의 결과물로 볼 것이냐, ‘그냥 주어진 사실’로 인정하고 말 것이냐의 신과 비지성, 그 사이에 우주 전체의 질서가 어떤 필요에 의해 이끌려져 가며 이를 수학적으로 풀어내지 못했을 뿐이라는 주장이 놓인다. 홀트는 존재론에 대한 수많은 지성들의 주장과 통찰이 자리한 세 점 사이를 오가며 난해한 궁극적 질문을 유쾌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탐색의 여정으로 이끈다.

짐 홀트의 첫 대화 상대는 현존하는 최고의 과학철학자인 피츠버그대 아돌프 그륀바움 교수다. 종교적인 믿음을 철저히 무시한 그륀바움 교수는 의식의 다양성과 인간 정신이 일으키는 문제들에는 매력을 느끼지만 존재의 이유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물음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일종의 가상의 문제다. 그는 빅뱅 역시 존재의 수수께끼를 분명하게 풀어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주는 기존에 존재하던 무의 상태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방법으로 ‘존재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연 신학’의 창시자로 유명한 영국의 종교철학자 리처드 스윈번은 그륀바움 교수의 거부파적 논리와 달리, 유신론적 방식을 취한다. 세상의 존재를 설명해줄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가설은 바로 모든 것의 뒤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신의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세상의 존재 문제를 설명하려 하지만 신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양자역학의 실질적인 작동 원리를 고안한 과학사상가 데이비드 도이치는 빅뱅이 왜 일어났는지 양자이론이 설명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존재 문제에 대해서는 답해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존재의 진짜 개념은 분석이 필요한 복잡한 내용이고, 어떤 단계에서 답할 수 있더라도 여전히 다음 단계가 남아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소립자물리학의 ‘기본 모형’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티븐 와인버그는 어떤 설명도 존재의 수수께끼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결론에 닿는다.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수리물리학자 로저 펜로즈 옥스퍼드대 교수가 보여주는 존재의 실체는 거의 기적처럼 스스로를 창조하고 스스로를 유지하는 모습이다.

짐 홀트는 우주학자이자 가치중심주의자인 존 레슬리를 찾아간다. 세상의 실체가 어떤 추상적인 원리에 스스로의 실존을 빚지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염려와 판단, 그리고 선의가 행해지는 방식에 본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홀트는 소감을 적는다. 독창적 사고를 지닌 사상가 데릭 바핏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세상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왜 세상은 무가 아니라 유인가?’에 대한 홀트의 지적 여정의 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골치 아픈 여정을 사파리 여행하듯 흥미롭고 긴장되게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홀트의 능력이다. 열띤 호기심과 학문에 대한 애정, 다양성을 포섭하는 열린 홀트의 시각을 통해 존재와 세상에 대한 눈이 넓어진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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