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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케인즈 전문가가 내놓은 잘 사는 길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1930년 케인즈는 케임브리지대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본주의가 펼칠 바람직한 미래상을 담아낸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란 얄팍한 에세이를 출판했다. 그는 책에서 자본 축적과 기술 진보에 의해 100년 뒤 선진국가에서의 생활표준은 4배에서 8배까지 더 높아지고 주당 15시간만 일해도 물질적 필요가 충족돼 경제적인 걱정거리에서 벗어난다고 예언했다. 100년 뒤가 멀지 않은 현재, 케인즈의 성장에 대한 예견은 놀랄 만큼 적중했지만 노동시간과 삶의 질에 관해서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케인즈 전문가인 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릭대 석좌교수는 케인즈의 가정이 실패한 이유를 생산성 증가로 인한 이익을 노동자들이 갖지 못하게 된 탓으로 돌린다. 즉 노동자들이 근로시간을 줄이지 않은 것은 더 적게 일해도 될 만큼 실질적인 소득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케인즈 전문가가 더 근본적인 이유로 주목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의해 족쇄가 풀린 ‘끝없는 욕구’다.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철학자인 아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와 함께 쓴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부키)에서 이 끝없는 욕구의 실체를 해부하며 돈에 대한 사랑과 욕망을 멈추지 못하도록 부추기는 자본주의 성장지상주의에 제동을 건다.

저자가 찾아낸 인류의 경험을 살펴보면, 돈에 대한 끝없는 추구가 개인이나 사회 전체의 우선가치로 절대시되는 일은 역사 전체에서 예외적인 현상에 속한다.

스키델스키 부자의 자본주의 비판은 최근 일련의 불도저식 성장지상주의 비판론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단지 비판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들은 욕망하는 삶이 아닌 좋은 삶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탐욕의 부추김에 맞서 좋은 삶을 구성하는 일곱가지 기본재(basic goods)는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 등이다. 저자는 이 기본재를 통해 성장이 무엇을 위한, 무엇의 성장이어야 하는지를 통계적으로 보여준다.

좋은 삶을 이루는 7가지 기본재는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1974년 이후 거의 늘지 않았다. 알코올로 인한 사망자 수, OECD 국가의 실업률, 혼인과 이혼율, 문화행사 참석률 등 확인할 수 있는 각종 통계 분석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경제성장을 구가했지만 아무런 목적이 없는 성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정치적으로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좋은 삶과 좋은 사회라는 이념을 중심부의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정책과 사회공동의 목표를 경제 성장이 아니라 기본재를 사람들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경제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기본재를 강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주당 노동시간의 제한과 법정휴일의 확대, 일자리 나누기 등 일의 압력 줄이기와 조건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 소비압력 줄이기(누진소비세, 광고의 제한), 세계화의 속도 조절, 자본 도피와 핫머니의 통제 등이 포함된다. 이런 과제는 성장제일주의로 달려온 많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사안들이지만 사회적 합의점을 이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좋은 삶이란 주제와 돈과 행복, 도덕의 문제는 사실 과거 경제학에서 동떨어진 주제가 아니었다. ‘도덕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가치 판단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생산적이면서도 공정한 경제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고민했다. 스키델스키 부자의 공동 작업은 그런 면에서 도덕경제학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인간이 자신들의 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제한적이거나 부족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도록 선택할지 연구하는 경제학은 우리가 좋은 삶을 실현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라는 저자들의 지적도 흘려버릴 일이 아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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