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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조문술> 창조경제 최대의 적, 갑을문화
갑과 을의 신분과 역할이 명확히 나뉘어지는 곳에서는 창조성이란 설 자리는커녕 낄 자리도 없다. 창조경제는 공동의 의사결정 위에 이뤄지는 수평적 분업과 융ㆍ복합적 협업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최대 공론은 갑을(甲乙)관계다. 일명 ‘라면상무’, ‘제빵회장’, ‘조폭유업’ 사건에서 보듯 뒤틀린 관계성을 축약하는 말이 바로 이 갑을관계다. 형식상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요건을 갖췄지만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내용상의 전근대를 뜻한다.

이런 전근대성은 도처에서 일상화돼 작동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근로자, 집주인과 세입자, 은행과 대출자, 공무원과 민원인…. 수주와 발주 또는 공급과 주문, 청탁과 수탁이라는 자본이나 권력적 요소가 개입되는 순간 수평적 교유관계는 일순 불평등 예속관계로 변한다.

또 거래관계가 없더라도 재산이나 지위, 지식이나 정보의 불균형은 2차적 갑을관계를 만들어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도시민과 농어민, 프랜차이즈빵집과 동네빵집, 특목고와 일반고, 청년층과 노년층의 관계쯤 될 것이다.

기술과 인식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이런 봉건적 기제는 언제든 발동할 준비가 돼 있다. 따라서 선진사회는 배려와 소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이를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군국주의적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이념과 체제가 다른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자본주의에서 오죽할까.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은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전체에 고루 퍼져서 작동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갑을문화가 나쁜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성, 기본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이다.

사회ㆍ경제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하고 막말을 들어야 한다면, 일감을 받는 처지에 있다고 납품단가를 후려치고 기술을 빼앗긴다면 그 사회란 폭력적 봉건성이 지배하는 곳이다. 본질적 민주주의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또한 창조경제 구현을 가로막는 것도 이 갑을문화다. 갑과 을의 신분과 역할이 명확히 나뉘어 비합리적이며,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관계가 횡행하는 곳에서는 창조성이란 설 자리는커녕 낄 자리도 없다. 창조경제는 공동의 의사결정 위에 이뤄지는 수평적 분업과 융ㆍ복합적 협업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이런 갑을문화, 봉건성을 몰아내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갑을문화가 지배하는 한 사람들은 갑의 지위를 쫓아(또는 최소한 을의 지위를 피하려고) 피튀기는 경쟁을 하게 되고, 갑의 지위를 획득한 이들의 ‘갑질’에 다수의 을들은 숨이 막히게 된다.

역사적으로 을의 반란이 조직화될 때 사회는 혁명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처럼 갑의 시늉만으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시늉은 외부의 힘에 도저히 못 견디는 그때 잠시뿐이다. 갑을의 동시적 자각과 반성 없이는 한치의 진보도 없다.

결국 갑을문제의 명확한 파악과 함께 제도적 개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적절한 규제를 통해 중소기업, 소상공인, 소비자, 비정규직을 갑의 횡포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창조경제란 궁극적으로 이들이 고루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갑을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상호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낼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됐다. 

freihe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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