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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자의 베니스 한국관…침잠하는 명상의 공간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늘 섭씨 35도를 웃도는 폭염을 선사(?)하던 이탈리아 베니스의 6월이 달라졌다. 저녁이면 초겨울 한파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고, 전례없는 빗줄기가 이어진다. 그 속에서도 ‘폭발할 듯한 표현과 이미지’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제 55회 베니스비엔날레. 그 격전의 예술마당에 오색의 영롱한 빛과 작가의 숨소리만 감도는 절제의 공간이 있다.
물질과 표현, 이미지와 개념이 범람하는 글로벌 현대미술축전에서 가장 비(非)물질적인 전시를 꾸민 국가관, 바로 한국관이다.

▶빛과 어둠 속에서 나를 만나는 공간=1895년 이탈리아 국왕의 은혼식을 기념해 처음 창설된 이래 세계 최고 권위를 이어가는 2013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은 차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관 커미셔너 김승덕(59,프랑스 르콘서시움 컨템포러리아트센터 전시기획 감독)의 큐레이팅 아래 작가 김수자(56)는 한국관을 마치 숨쉬는 심장처럼 꾸몄다. 타이틀은 ‘호흡:보따리(To Breathe:Bottari)’.

전시 현장에서 만난 김수자 작가는 “30여년 전 보따리 작업을 처음 선보인 이래 그간의 실험을 총체적으로 결집한 작품”이라며 “작고 복잡한 구조의 한국관은 (전시가) 쉽지않은 공간인데, 건물 외부의 유리창을 하나의 피부로, 한국관을 인간의 몸으로 제시했다. 거울과 특수 제작한 반투명 필름, 자연의 빛을 써서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꿨다”고 했다. 

영롱한 빛을 발하는 공간에 선 작가 김수자. 유리 전시관 전체를 인간의 몸으로 해석하고, 밝음과 어둠, 음과 양, 순간과 영원을 아우른 작업이다.                                                                                               [사진(베니스)=이영란 기자]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와는 달리 유리로 마감된 한국관은 전시를 위해 늘 가벽이 설치됐거나 빛을 차단하곤 했다. 그러나 김수자는 한국관의 문제점을 역으로 활용해, 공간 전체를 작품화한 것. 설치와 사운드 퍼포먼스로 이뤄진 한국관은 자연광이 굴절되며 오묘한 무지갯빛이 넘실댄다.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귓가엔 낮고 고요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작가의 호흡이다.

찬란한 빛을 발하는 전시관 순례를 마치면 칠흑처럼 어두운 작은 방이 기다린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으며 공간을 음미하다 보면 호흡과 발걸음은 저절로 차분해진다. 어둠과 밝음, 음과 양, 현실과 피안을 품고 있는 김수자의 공간은 광활한 우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찬찬히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미지 박람회장이 된 미술제전=‘미술올림픽’이라는 별칭답게 무려 88개에 이르는 각국의 국가관과 함께 5개월의 대장정에 돌입한 베니스비엔날레의 올해 본전시 주제는 ‘백과사전식 궁전(The Encyclopedic Palace)’이다.

2010 광주비엔날레에 이어 2013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에 오른 마시밀리아노 지오니(39,이탈리아)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한자리에 모으고자 한 상상 속 박물관처럼 비엔날레 또한 현대미술의 무한한 세계를 한 곳에 모으려는 실험의 마당”이라고 했다.
 
 인구 6만2천명에 불과한 ‘물의 도시’ 베니스는 비엔날레 기간 중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수십만의 관람객으로 열기로 가득찬다.                                                                                                                             [사진(베니스)= 이영란 기자]

이에 기획자는 지난 한 세기에 걸친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부터 최근작까지 38개국 150여 작가의 방대한 작품을 백과사전식으로 펼쳐놓았다.
전시는 정신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이 16년간 집필한 원고와 손수 그린 정교한 삽화를 엮은 ‘레드북’으로 시작한다. 융의 ‘레드북’이 미국의 현대미술가 신디 셔먼이 큐레이팅한 파격적인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소개돼 이채롭다.

본 전시에는 리처드 세라, 디터 로스, 폴 매카시, 브루스 나우먼같은 쟁쟁한 작가들과 함께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교차하고 있다. 또 각종 자료와 도판이 신랄한 작품과 어우러져 있다. 이에따라 신선하다는 평가와 함께 낯설고 산만하다는 반응이 엇갈린다.

한편 카스텔로 자르디니(공원) 일대의 국가별 독립전시에는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88개국이 참여했다. 앙골라, 바하마, 바레인, 코소보, 교황청 등 10개국은 올해 첫 출전(?)인데, 그중 앙골라가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국가관 중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이 국가관을 스와핑해 화제다. 양국은 우호조약 체결 50주년을 기념해 국가관을 바꿔 전시를 연 것. 이같은 시도는 비엔날레 사상 최초다. 알바니아 출신의 안리 살라의 절묘한 영상작업을 내세운 프랑스관과 조각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밀어붙인 사라 제의 야심찬 프로젝트로 꾸민 미국관은 특히 인기가 높다. 비엔날레는 오는 11월 24일까지 계속된다.


yrlee@heraldcorp.com

조각설치 작업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사라 제의 미국관 1전시실 장면.           [사진(베니스)=이영란 기자]

독일관은 자국 작가가 아닌 중국의 아이웨이웨이를 대표작가로 내세웠다. 아이웨이웨이는 스촨성에서 수거해온 어린이용 의자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사진(베니스)= 이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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