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배구쟁이, 유혹 뿌리치기 어려웠다”=인터뷰한 날도 구단주인 최윤 아프로파이넨셜그룹(브랜드명 러시앤캐시) 회장과 배구 얘기만 하다 새벽까지 자리가 이어졌다고 했다. 최 회장의 부탁은 단 하나, “최대한 끈끈한 열정을 가져달라”는 것이었다. 최 회장은 16명의 감독 지원자를 다 뿌리치고 지도자 생각도 없던 김세진을 직접 낙점했다. '경험' 대신 '가능성과 열정'을 믿은 것이다.
김세진 역시 최 회장의 열정을 믿고 손을 잡았다. “감독 제안 받고 일주일 고민했어요. 그런데 지난 시즌 방송해설하면서 러시앤캐시가 드림식스를 운영하는 모습을 봤잖아요. 그때 보여준 최 회장의 엄청난 배구열정이 제 마음을 움직인 거죠.” 김세진 감독은 솔직했다. “저 사실 돈도 벌 만큼 벌고 있고, 하고 있는 일(사업ㆍ방송ㆍ겸임교수)도 많아요. 다 놓치기 싫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배구쟁이’더라고요. 창단 감독에다 모든 그림을 다 내가 그릴 수 있다는데 그 유혹, 배구인이라면 뿌리치기 어려워요.”
▶“신치용의 관리, 김성근의 믿음”=김세진 감독의 선임 소식에 많은 배구인과 팬들의 반응은 ‘충격 반, 신선함 반’이었다. 김 감독은 “충격이 훨씬 더 컸겠죠?”라며 웃었다. 지도자 경험이 일천한 초보에 슈퍼스타 출신 감독. 기대의 눈길 못지않게 우려의 시선 또한 따갑다. 그는 스타 출신이지만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팀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배구 감독 김세진 |
“팀 꾸려지면 옷부터 벗을 겁니다. 홀딱 벗고 선수들에게 다 보여줄 거예요. 감독 혼자 잘났다고 나서면 팀 망가집니다. 선수들 기 살게 만들어주고 대신 훈련 땐 눈물 쏙 빠지게 해야죠. 빠르고 끈적끈적한 팀이 목표예요.”
수많은 제자 중 유독 김세진에게만 “아들같은 선수”라며 애정을 쏟았던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너라면 잘 할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창단 멤버로 들어가 그 팀에서 은퇴했으니 내가 아는 팀은 삼성화재가 전부다. 게다가 대한민국 1등팀 아닌가. 당연히 삼성화재의 장점을 흡수하고 싶다”고 했다. 가장 닮고 싶은 감독의 모습으로 “신치용 감독의 관리, 김성근 감독의 믿음”을 꼽은 김 감독은 “좋은 선배들이 많이 계시지만 이제부턴 경쟁자다. 결국 감독은 외로운 길을 가야한다. 많이 다치기도 할 거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도와준다면 자신있다”고 했다.
▶“빠르고 끈끈한 팀, 선수들이 웃는 팀”=선수로도, 해설자로도 100점 평가를 받은 김세진 감독은 이제 지도자로서 ‘트리플 만점’에 도전한다. 선수시절에도 겉으론 설렁설렁, 쉽게 플레이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김세진은 연습벌레에 완벽주의자다. “성격이 워낙 예민해서” 뭐 하나 대충하는 것이 없었다. 2007년 처음 방송해설을 맡았을 때도 남몰래 전담강사를 고용해 석달간 스피치 훈련을 받기도 했다. “은퇴한 뒤 지갑에 만원 한 장 없어 밖에 못나가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고생한 거에 비하면 앞으로 깨지고 다치더라도 ‘그까짓거’ 하고 넘길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선수들이 코트에서 웃는 모습을 보는 거, 그게 지금으로선 가장 큰 목표에요.”
김세진 감독의 진정한 꿈은 20년 후에 맞춰져 있다. “이제까지 너무 화려하게 살아왔어요. 앞으로도 얼마간은 그러겠죠. 하지만 60세 이후엔 조용히 한국 배구를 지원하며 살고 싶어요. 배구를 도울 수 있는 위치에 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내 인생의 황금기는 아마 그 때가 될 거예요.”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