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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상품, 복잡한 약관 다 지워!
경기불황 지속 소비자들 실용적인 상품 추구…원하는 혜택만 골라 담은 카드·불필요한 특약 뺀 보험 등 간결 또 간결
금융상품이 간결해졌다. 복잡한 장식을 덜어내고 기본을 살렸다. 신용카드 광고를 눈여겨 보는 소비자라면 빵빵한 혜택을 강조하던 문구가 ‘꼭 필요한’ ‘합리적인’ ‘원카드’ 같은 용어로 바뀐 흐름을 눈치챘을 것이다.

카드, 보험, 증권 등 금융상품이 단순화하고 있다.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적으로 복잡한 금융상품에 대한 반성이 시작됐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상품 설계를 단순화하고, 간결하면서도 충분한 설명 방식을 개발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국내의 카드나 보험시장이 이미 성숙기에 진입했다는 것도 문제다. 이미 너무 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개발됐고, 소비자는 쫓아갈 수 없는 정보의 과잉에 녹초가 됐다. 이 같은 환경 변화 속에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상품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같은 비대면 채널은 이 같은 경향을 더욱 가속화했다. 보다 쉽고 직관적인 상품만이 온라인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때문에 금융상품은 ‘심플’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상품의 대두=당신이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4.5장의 신용카드를 소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활동인구라면 7장이 넘어간다. 통신, 쇼핑, 여행, 교통, 교육 등의 다양한 혜택이 산재해 마구잡이로 발급됐던 카드는 1장으로 압축되는 추세다. 자주 쓰는 혜택을 카드 한 장에 담은 ‘원(one)카드’ 열풍이 대표적이다.

KB국민카드는 이달 초 전체 가맹점에서 0.8%를 할인해주는 ‘혜담Ⅱ’를 출시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품목의 할인혜택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혜담’의 후속작으로, KB국민카드는 두 종류의 ‘원카드’를 주력상품 라인업으로 구축했다. 


신한카드가 올해 출시한 ‘큐브카드’나 롯데카드의 ‘롯데7유닛’도 한 장의 카드에 원하는 혜택을 골라담는 ‘선택형 원카드’ 형태다. ‘삼성카드 4’나 ‘현대카드 제로’는 전체 가맹점에서 0.7~0.8%의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범용형 원카드’다.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서비스 중에서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알짜를 골라 카드에 녹여내는 것이 카드사의 최대 고민이 됐다.

간결함을 찾는 시도는 보험상품도 마찬가지다. 현대라이프가 지난 1월 출시한 ‘현대라이프ZERO’는 파격적인 구성이 화제가 됐다.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보험내용과 지급조건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었다. 불필요한 특약을 빼고 사망과 암, 5대 성인병, 어린이보험 등 4대 핵심보장과 필수기간(10ㆍ20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 상품은 출시 3개월 만에 1만6000건 이상의 계약을 달성하며 순항 중이다.

▶어디에 ‘충분함’이 있는가?=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소비자의 소비가 점점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다 간결하고 실용적인 상품을 찾는 경향도 강해지지만, 문제는 소비자와 금융사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심플의 정도’가 어디냐 하는 점이다.

카드업계가 수백장의 카드에 나눠져 있는 혜택을 한 장에 모으는 압축을 진행하고 있다면, 보험업계는 너무 복잡한 정보가 담겨있는 한 상품을 잘게 쪼개 단순함을 시도한다. 대표적인 예가 단독형 실손보험이다. 이는 사망보험료 등 불필요한 보장의 거품을 빼고 실제 병ㆍ의원에서 쓴 의료비만 보장하도록 단순화한 보험으로 1인당 월 보험료가 1만~2만원대에 불과하다. 소비자 선호도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지만 보험사는 수익이 되지 않는 단독형 실손 판매에 소극적이다. 금융당국은 하반기부터 단독형 실손보험을 은행에서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고객과 보험사가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카드사도 기존 부가서비스를 축소하려는 당국의 압박과 수익성 악화 등 대내외적 환경변화가 ‘원카드’의 유행을 가속화했지만 상품이 비슷해졌다는 부작용을 낳았다. 카드가 점차 심플해지는 추세 속에서 카드사가 어떻게 자사의 상품을 고객에게 어필할 것인지가 숙제로 남았다.

▶“심플은 복잡함을 뛰어넘어야 얻을 수 있는 것”=수년 전에도 ‘원카드’ 개념의 카드는 있었지만, 부가서비스 호황기를 거치고 등장한 최근의 ‘원카드’는 보다 정교하고 정제돼 있다. 기존 상품보다 진화됐다. 고객이 실제 사용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수없이 행한 결과다.

전 세계적 생활용품 ‘무인양품’을 만든 일본 디자이너 하라켄야는 “심플이라는 것은 복잡함을 뛰어넘어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대 건축물의 간결하고 단순한 디자인의 원류로 평가받는 ‘바우하우스’를 예로 들며 “영양 넘치는 쓰레기 더미를 검증하고 분해해 사고(思考)라는 강력한 절구에 넣어 곱게 다지고 체로 걸러내어 정리한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건축가는 왕궁의 화려한 장식예술을 해체해 색채, 형태, 소재, 점, 선, 면 등 기본 요소만 남기고 수술대 위에 깨끗하게 정돈한 후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유럽의 전통건축과는 전혀 다른 간결하고 실용적인 현대건물이 탄생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금융상품이 추구하는 ‘심플함’도 현재의 정보과잉을 어떻게 정리해 무엇을 남기고 새로 조합할 것인지에 따라 그 성공 여부가 달렸다. 최근 금융사는 빅데이터를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핵심서비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에 한창이다.

복잡하고 난해한 정보에 대한 고객의 피로감을 줄여주고 합리적인 소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상품을 시장은 기다리고 있다.

이자영 기자/nointe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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