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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적 ‘벤처구단 ’… 넥센의 1위 질주 비결은
“이긴다” 리더의 긍정적 메시지
“중심이 필요” 탄탄한 주력사업
“리스크 관리” 미래를 위한 투자



‘작은 기업’의 반란이 시작됐다. 직원(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1억2269만원으로 9개 회사(구단) 중 8위. 업계(리그) 평균 1억4535만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난다 긴다 하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올해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바로 올시즌 프로야구 1위를 질주 중인 넥센 히어로즈 이야기다. 14일 현재 31경기서 21승10패를 기록하며 2위 삼성에 1게임 차 앞선 단독 선두. 기업으로 치면 불과 몇 년 전 첫발을 내디딘 벤처기업이 수십년 역사의 대기업을 넘어서는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예년과는 달리 ‘반짝 활약’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 더 무섭다. 대기업을 뛰어넘은 작은 기업, 넥센의 영업 비밀은 뭘까.

▶“우리는 이긴다” 리더의 긍정 메시지=지난 3일 목동 KIA전. 1-0으로 앞서던 8회 초 2사 만루 위기를 맞았다. 염경엽(45) 넥센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 투수와 포수, 내야 수비진을 모두 불러 모았다. 시즌 중 흔한 장면은 아니었다. 염 감독은 “볼넷은 주지 말고 과감히 승부해라. 안타를 맞으면 내가 책임진다. 자신감을 갖고 던져라”고 했다. 배터리만 불러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염 감독은 내야수 전원을 불러 ‘우린 함께 간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결국 송신영은 후속타자 김상현을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넥센은 이날 1-0의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벤처기업이라면 남들이 갖지 못한 첨단기술 한 가지쯤은 있어야 한다. 넥센에선 세분화된 작전과 족집게 용병술을 지닌 염 감독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작은 기업일수록 리더의 역할은 크다. 염 감독은 지난겨울 기존 팀보다 서너 배 많은 작전을 선수들에게 주입했고 선수들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효봉 XTM 해설위원은 “염경엽 감독은 대표적인 학구파 감독이다. 많은 자료를 직접 챙기며 선수들의 세밀한 움직임을 지휘한다. 마치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보는 듯하다”고 했다. 염 감독은 경기에 져도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자주 하지 않는다. 대신 “너희는 강하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넥센은 9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역전승(10승)과 가장 많은 1점차 승리(6승)를 챙겼다. 김민성은 “나뿐만 아니라 선수들 모두 지고 있어도 진다는 기분이 안 든다”고 했다. 

▶“중심은 필요하다” 탄탄한 주력 사업=신기술도 중요하지만 기본과 중심은 있어야 한다. 도전정신만 갖고는 ‘바람’은 일으킬지언정 긴 승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남들과 1 대 1로 부딪혀서도 이겨낼 수 있는 ‘진짜 중심’이 필요하다.

넥센엔 ‘LPG 타선’으로 불리는 이택근(0.275)-박병호(홈런 9개ㆍ1위)-강정호(0.277)의 묵직한 중심 타선과 리그 최고의 외국인 원투펀치 나이트(4승ㆍ1위)와 밴헤켄(3승)이 바로 흔들리지 않는 자산이다. 여기에 이성열(홈런 9개ㆍ1위) 서건창 등이 타선에서, 강윤구와 김병현(이상 3승), 손승락(15세이브ㆍ1위) 등이 마운드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이 역시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넥센은 여러 차례의 깜짝 트레이드로 ‘선수 팔아 운영하는 구단’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트레이드를 통한 선수보강을 멈추지 않았다. 대기업 못지않은 과감하고 공격적인 인수ㆍ합병(M&A)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과 볼륨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효봉 위원은 “올시즌 다시 부른 중간계투 송신영이 호투하며 넥센 마운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다. 요소요소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키워놓아 팀 전체 퀄리티가 확실히 좋아졌다”고 평했다.

▶“리스크 관리는 미리미리” 미래를 내다보는 준비=직원 수가 적은 기업일수록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위기 상황이 돌출한다. 선수층이 얇은 넥센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난 시즌 겪은 뼈아픈 교훈은 ‘리스크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넥센은 지난해에도 5월 한 때 1위에 오르며 전반기를 3위로 마감했다. 하지만 후반기 선수들의 체력 저하와 부상이 겹치면서 결국 6위로 시즌을 끝냈다.

올해는 달라졌다. 나이트가 아내의 넷째 아이 출산으로 빠지는 걸 염두에 두고 한 달 전부터 2군에서 대체 선발자원을 마련해 놓은 게 대표적인 예다. 예상 가능한 위기상황과 장애물은 미리미리 대비해야 긴 레이스를 버틸 수 있다.

염 감독은 무리하게 2군 선수들을 당겨쓰기보다는 1군 주전들을 적절히 쉬게 하면서 체력을 안배하고 있다. 지난 주말 SK와 2연전서도 이택근과 서건창을 선발에서 제외한 뒤 결정적일 때 대타요원으로 기용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염 감독은 선수 개개인이 몇 경기를 소화할 수 있으며 몇 경기를 베스트로 뛸 수 있는지 철저한 계산을 갖고 팀을 운용한다. 주전들의 휴식은 백업요원들의 기용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주전-비주전 간의 건전한 경쟁을 유발하는 효과도 얻는다.

‘작은 구단’ 넥센의 1등 영업 비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지나치기 쉬운 성공의 기본기가 숨어 있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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