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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차는 풍경속을, 우린 시간속을 달린다
[제천ㆍ단양ㆍ추전ㆍ고한=글ㆍ사진 박동미 기자]‘덜커덩’. 기차가 출발을 알린다. 마치 타임머신의 전원이 켜진 듯하다. KTX를 타면 ‘스르륵’ 잠들려고 하는 순간, 부산에 도착하는 시대. 사람들은 다시 ‘느린 열차’를 타기 시작했다. 증기기관차의 ‘칙칙폭폭’까진 아니어도 다시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반갑기만 하다. 시원하게 뚫린 창문은 푸른 자연을 함께 실어 나른다. 눈을 감으면 창문 너머 풍경이 귓가에 와닿는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설렘이 밀려온다. 기차에 몸을 실으면 누구나 ‘로맨티스트’가 된다.

다음달 12일 한국철도공사는 대한민국 ‘로맨티스트’들을 위한 관광열차를 개통한다. 근대화의 혈맥인 중부 내륙권 철도가 변신을 꾀하는 셈. 일제강점기 한반도와 만주의 지하자원 수탈을 위해 건설된 중앙선(383㎞), 경북 영주~강원 강릉을 잇는 영동선(193.6㎞), 무연탄을 취급하기 위해 건설된 산업선인 태백선(103.8㎞)이 침체기를 거쳐 ‘명품 관광철도’로 거듭난다.

내륙을 순환하는 ‘O트레인’과 백두대간 협곡을 왕복하는 ‘V트레인’이다. 일본 JR규슈의 ‘유후인 노모리(후쿠오카와 온천지 유후인을 왕복하는 특급 관광열차)’나 호주 퀸즐랜드의 ‘쿠란다 관광열차(1800년대 화물을 실어 나르던 열차를 개조해 케언스~쿠란다를 왕복하는 기차. 중간에 멈추는 덕에 열대우림을 감상할 수 있다)’가 부럽지 않다. 

진달래색 옷을 입은 협곡열차.

▶기차는 풍경 속을 달리고, 사람은 ‘시간’ 속을 달린다=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ㆍ1시간10분 소요)를 타고 있으면 첩첩산중 아찔한 협곡을 구경하느라 1시간도 빠듯한 느낌이다. 중부 내륙 순환열차(O트레인)는 한 번 순환하는 데에 총 4시간50분이 소요된다. V트레인과 비교하면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기존 ‘누리로(EMU-150)’ 열차를 개조한 O트레인은 기차여행이 보편화돼 있는 일본과 유럽의 특급 관광열차처럼 모든 객실에서 목조 느낌을 물씬 풍긴다. 맨 앞과 뒤의 전망석 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알록달록한 천장이 고풍스러운 카페실에서 우아하게 커피 한잔을 할 수도 있다. 또 누리로에서 50석을 줄인 만큼 완벽(?)하게 ‘사생활’을 지켜줄 커플룸과 넓찍한 패밀리룸, 가족석, 장애인석도 갖췄다. 연인들은 ‘알콩달콩’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가족들은 다 같이 모여 보드게임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휴대폰 등 전자기기의 충전을 위한 전기콘센트가 좌석마다 구비돼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스마트폰’에서 손을 뗄 수 없는 ‘디지털 노마드’족이 가장 반길 부분.

V트레인은 중부 내륙 지역의 가장 아름다운 구간을 왕복한다. 특히 분천~석포에 이르는 구간은 시속 30㎞로 천천히 이동해 태백 준령의 비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외관을 언뜻 봤을 때에는 유럽이나 일본의 관광열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빨간색이라고 느꼈는데, 다시 보니 장밋빛 혹은 짙은 분홍이다. 열차 외관과 내부 디자인을 담당한 프랑스 출신의 디자이너 펠릭스 씨는 “한국의 진달래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지난 21일 시승 행사에 동석한 그는 “사람들이 ‘빨강’이라고 말하면 섭섭하다”며 “섬세하게 한국의 풍경을 관찰한 후 열차의 색상을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협곡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V트레인 내부. 비둘기호를 연상시키는 좌석배치와 선풍기가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한다.

협곡 사이를 달리는 V트레인에는 냉방장치가 없다. 천장에는 선풍기가 달려 있고,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먹을 수 있는 목탄 난로가 설치돼 있다. 철저하게 ‘복고’풍이다. 옛 비둘기호를 연상시키는 의자와 접이식 승강문, 백열전구 등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소품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마지막 포인트는 ‘예스러운’ 승무원의 복장. 어느덧 1960~70년대로의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소박한 산골 기차역… 정차역 주변 명소는=기차는 느리다. 모든 역에 멈춰선다. 서성대는 사람조차 드문 시골 기차역. 시간이 멈춘 걸까. 최첨단 디지털 시대의 고단함은 전혀 모르는 듯 ‘세월 모르는’ 천진난만한 풍경이다. 그래서일까. 제천ㆍ단양ㆍ풍기ㆍ봉화ㆍ철암ㆍ추전 등 순환열차의 ‘소박한’ 정차역은 그 자체로 둘러볼 만하다. 특히 협곡열차 구간에 자리 잡은 ‘첩첩산중’ 간이역(승부역ㆍ양원역ㆍ비동임시승강장)은 여행마니아들에겐 손꼽히는 방문지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동안 교통편이 어려워 접근이 쉽지 않았으나 관광열차 개통으로 보다 많은 이가 찾을 것으로 보인다.

순환노선 첫 정차역인 제천 인근에서는 의림지ㆍ청풍문화재단지ㆍ옥순봉ㆍ박달재ㆍ배론성지 등을 돌아볼 수 있다. 번지점프를 할 수 있는 레포츠시설과 청풍호자드락길 등 트레킹 코스도 이어진다. 단양역 가까이에는 도담산봉을 비롯해 온달관광지ㆍ다누리센터ㆍ고수동굴 등이 있다. 다누리센터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민물고기전시관이 있는 아쿠아리움 관람도 가능하다.

영주와 풍기에서는 부석사ㆍ소수서원ㆍ선비촌ㆍ수도리전통마을 등을 둘러보자. 은어 축제(7월)나 송이 축제(9월)가 열리는 시기엔 봉화역도 지나치지 말도록. 태백 추전역은 국내에서 가장 높은 역이다. 최고지대 건식 동굴인 용연동굴과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 등을 돌아볼 수 있다. 매년 1월 열리는 태백산 눈축제는 이미 국내 대표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V트레인에서 한 승객이 바깥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 밖에 도계역 인근 도계유리공예마을에서 유리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체험을 맛볼 수 있고, 환선굴과 대금굴은 모노레일을 타고 구경이 가능하다. 사북ㆍ고한은 하이원리조트와 강원랜드의 관문이 되며, 민둥산ㆍ정선은 레일바이크ㆍ시티투어와 연계해 돌아볼 수 있다.

걷기를 좋아한다면 ‘협곡 트레킹’(분천~승부), ‘낙동강 비경길’(승부역~양원역), ‘수채화길’(양원역~구암사), ‘가호 가는 길’(승부역~비동임시승강장) 등 기차역과 낙동강 상류 구간을 잇는 트레킹 코스를 훑는 것도 괜찮다.

pdm@heraldcorp.com 

중부 내륙을 순환하는 O트레인 기관실. 기차가 싱그러운 봄의 숲을 지나고 있다.
열차의 정차역은 또 하나의 관광명소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인 추전역.
순환 열차 코스 중 단양역은 그냥 지나쳐선 안된다. 단양 8경중 으뜸으로 치는 도담삼봉의 모습.
단양 2경 석문. 도담삼봉에서 상류쪽으로 올라간다. 7~8분만 걸으면 또다른 비경 앞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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