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100년의 미래 설계한 최태지 단장의 국립발레단과의 30년
“1983년, 한국에 처음 왔거든요. 그 해가 국립발레단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는 해였어요. 그러고 보니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24살의 젊은 무용수가 혈혈단신 한국으로 건너온 건 딱 30년 전 이맘때다. 재일교포 출신이라 한국말도 서투르고 문화도 낯설었지만 최태지(54)국립발레단장은 한국에 가면 국립발레단이 있다는 소리 하나만 듣고 무작정 현해탄을 건너왔다.

“‘세헤라자데’란 작품의 객원 수석무용수로 왔어요. 국립발레단 방문은 4월 정도였죠. 오늘도 봄날이라 햇빛이 좋아졌잖아요. 그 때 소개를 받고 처음 장충동 국립극장을 걸어서 올라간 기억이 나네요.”

아직 바람은 차지만 햇살만큼은 따스했던 오후, 지난 25일 작품 ‘라 바야데르’ 준비에 여념이 없는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을 서울 예술의전당 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라 바야데르’는 제가 발레단 지도위원이던 1995년 김혜식 단장님 시절 국립극장 산하 전속단체로 있던 시기에 했던 작품이에요. 재단법인 설립 이후 처음이고 18년만에 다시 하는 작품이죠.”

그때만해도 대학생들을 모을 정도로 코르 드 발레가 10여 명 정도밖엔 되지 않았고 규모도 작게 해서 전막공연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국립발레단은 32명의 무용수를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85명의 무용수를 보유하며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 전엔 하고 싶어도 가져오지 못했던 레퍼토리, 지금은 그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

다양한 레퍼토리 보유는 발레단 명성의 척도다. ‘라 바야데르’같은 대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운 부분이었지만 향상된 국내 발레 수준에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등에 이어 6번째로 2년 전 이 작품을 국립발레단에 선사했다.

지난해 50주년을 맞은 국립발레단은 ‘50년의 꿈 100년의 감동’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포이즈’, ‘아름다운 조우’같은 창작발레 개발과 김리회, 박슬기, 이은원 등 신예 무용수들을 수석으로 승급시키며 세대교체도 이뤘다. 50주년을 준비하면서도 지방공연까지 모두 120회 가량 공연하며 거의 3일에 1번꼴로 무대를 만들었다. 물론 그렇게 노력했으니 슈투트가르트발레단, ABT, 마린스키발레단 등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 내한공연을 해도 102%라는 발레단 사상 초유의 매진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단원들도 힘들텐데 제가 쓰러져 있으면 되겠습니까. 출근해도 단원들이 있으니 전 힘들단 소리 못하고 긴장하며 살죠. 저도 무용수였지만 항상 긴장 속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 해나가야 해요.”

올해도 서울 40회, 지방 80회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작도 중요하지만 올해는 그동안 미처 소개하지 못한 ‘라 바야데르’같은 대작 발레를 선보이기로 했다. 물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도 얻고 ‘포이즈’같은 창작발레도 준비중이다. 단원 복지와 경력관리는 언제나 신경쓰는 부분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봐 온 김주원, 김지영은 어느새 정상급 무용수가 돼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더 하고 싶다는 최태지 단장은 발레로 많은이들의 행복지수를 높이고 싶은 마음이다.

매일 다음 작품만 생각하며 30년을 보냈고 12년을 단장으로 발레단을 이끌었다. “단장이 되려고 온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인연이 깊어졌다”고 말하는 최태지 단장. 다시금 연습실로 발길을 돌리는 그에게 문득 무용수로 ‘라 바야데르’를 춘 적이 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라 바야데르’는 추지 못했어요. 슬프죠. 그래도 스텝을 다 알아서 맘 속에선 춤춰요.”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